국내 아랍인들, 테러관련 불똥튈까 우려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43분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이 아랍계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아랍계 체류자들도 이 사건으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14일 낮 12시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이슬람 서울중앙성원으로 가는 길목. 평소 같으면 오후 1시 ‘주마(아랍어로 금요일)예배’를 올리려는 아랍계 이슬람교도들로 가득했을 텐데 이날은 크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평소 500여명이 오던 주마예배에 이날은 200여명만이 참석했다.

경기 파주시에서 일한다는 파키스탄인 투도르(28)는 “테러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다는 뉴스를 듣고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경찰의 검문에 걸릴까봐 예배를 포기한 것 같다”며 “테러사건 이후 서울에 와 있는 아랍인의 상당수가 사는 곳을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 만나기를 꺼리게 됐다”고 전했다.

중앙성원 근처에서 식육점 도매를 하는 정하윤씨(56)는 “이슬람식당을 찾았더니 아랍계 손님들이 평소의 반으로 줄었다며 주인들이 울상이더라”고 전했다.

이번 일로 이슬람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걱정하는 이슬람교도들도 있었다.

터키인 파록 준불(42)은 “이번 사건은 너무 슬픈 일이지만 정치적인 문제일 뿐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면서 “17억 이슬람교도 중 몇 명이 나쁘다고 해서 전체가 다 욕을 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중앙성원의 한국인 관계자도 “‘문명간의 충돌’로 몰고 가는 것은 잘못”이라며 “몇몇 아랍인 테러리스트를 국내 거주 이슬람교도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미 8군부대가 인접해 있고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용산구 이태원 상점가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버거킹 이태원지점 정운주 부지점장은 “테러 이후 미군부대의 경계령 등으로 손님이 절반 가량 줄었고 오늘도 평소의 70% 수준”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하는 김주은(金週恩·40)씨는 “아랍계 사람과 미국 관광객들이 가게에서 서로 옷을 고르고 있을 때면 왠지 싸움이 일어날까봐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8군 소속 조셉 일병(23)은 “우리는 이슬람교도 모두를 테러범으로 보는 식의 감정적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테러의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동용·최호원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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