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첫 정상회담]부시-MD 고이즈미-개혁 명분 확보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9분


고이즈미 총리(오른쪽)가 부시 대통령이 선물로 준 잠바를 보도진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오른쪽)가 부시 대통령이 선물로
준 잠바를 보도진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교외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첫 미일정상회담은 첨예한 문제는 ‘계속 협의’로 넘기고 주요 현안은 서로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합의를 이뤘다.

우선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의 관심사인 미사일방어(MD)계획에 대해 “이해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미일 공동연구는 계속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의 체면을 살려줬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미국과 같은 수준인 2억달러를 에이즈 기금으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도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말해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노선에 힘을 실어줬다.

양국이 외교 안보 분야에서 더욱 긴밀히 대화를 해나가기로 합의하고 경제부문에서는 새로 차관급의 경제협의체를 만들기로 한 것도 성과로 평가된다. 새로운 경제협의체는 차관급과 실무진, 민관협의 등 3개 레벨에서 이뤄지며 규제완화와 무역 투자 등 4개 분야에 걸쳐 올 가을 첫 회의를 갖는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의사를 밝힌 미국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고위급 협의를 계속해 나간다는 선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축소 문제도 “서로 노력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번 정상회담은 부시 대통령보다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내에서 85%가 넘는 높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외교 수완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미일정상회담을 ‘대체로 무난했다’고 평가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 등 연립 3당 간사장,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청장관을 잇달아 미국에 보내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경제개혁정책이 평가를 받음으로써 대미 공약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일본측의 시각이다. 즉 고이즈미 총리는 앞으로 공약한 대로 2, 3년 안에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국측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고이즈미 총리가 최대 현안인 구조개혁을 미국에 약속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국내의 반대세력을 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대단히 훌륭한 회담이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미일 정상은 올 가을 도쿄(東京)에서 다시 회담을 갖기로 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또 미군 성폭행" 일본 발칵▼

주일 미군기지가 집중돼 있는 일본 오키나와(沖繩)가 미군의 성폭행 사건으로 또다시 들끓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오키나와 중부의 자탄(北谷)마을 한 주차장에서 20대 여성이 미군 병사 3, 4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명의 공군병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들이 타고 달아난 자동차가 미군이 사용하는 ‘Y’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부근 가데나(嘉手納)공군기지 소속 중사를 용의자로 연행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중사는 “당시 만취해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며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다른 미군 병사들은 범행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미군에 대한 항의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기지와 군대를 용서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임’은 “전후 56년간 사건 사고를 반복하는 미군기지와 군대는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도 “오키나와현민과 국민의 분노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항의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이런 범죄는 주민 감정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온다”고 우려를 표시했고 미국의 주요언론들도 이 사건을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주민들은 30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오키나와의 미군 범죄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는 95년 초등학생이 미군병사 3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미군에 대한 반감이 깊어졌으며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돼 있는 데 대한 불만이 높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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