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 취재기

  • 입력 2001년 4월 23일 14시 33분


차도르, 모스크, 석유, 중동평화협상,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동아일보 국제부가 새해 벽두부터 장기 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는 ‘13억 이슬람과의 대화’시리즈에 처음 참가할 때 필자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들이었다. ‘이슬람’하면 독자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눈이 어디 숨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을 잔뜩 가린 검은색 차도르. 형편없는 여권(女權), 테러집단…. 막연하지만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사실 이런 인식은 국제부 기자들이라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었던게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의 관심권 밖에 있었던 이슬람에 동아일보 국제부가 돋보기를 들이대게 된 계기는 지난해 6월 국제부 조현주 차장 앞으로 전달된 어느 연세대 여학생의 e메일이었다.

이슬람교도인 이 여대생의 메일은 동아일보가 그 며칠전 보도한 “이슬람 여권신장 요원하다”라는 내용의 기사에 대한 반론이었다. 그러자 유달리 새 것에 대한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조차장은 직접 대학으로 찾아가 학생을 만났다. 조차장은 그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국내의 이슬람에 대한 소개가 거의 전무할 뿐더러 잘못된 인식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채 회사로 돌아왔다.

▼'이슬람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이렇게 해서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이슬람 문화 탐구시리즈가 시작됐다. '이슬람 기획팀'은 전 세계의 이슬람 국가들을 직접 방문해 그들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를 다방면에서 분석해보자는 얼핏' 황당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세워 나갔다. 마침 중동지역에 연고가 많은 한국가스공사가 프로젝트 진행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프로젝트 안팎을 도와줄 전문가도 필요했는데, 이때 떠오른 인물이 국내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와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기획팀의 부탁을 흔쾌히 승락한 이 교수는 "이제야말로 이슬람에 대해 주목할 때"라면 "문명과의 화해를 시도하려는 동아일보에 대단히 감사하다"는 과찬으로 취재팀을 격려했다. 사실상 국제부원 전원이 참여한 기획팀은 20여종의 책을 구입, 돌려가며 읽기 시작했고, 취재국가를 주제별로 분류, 필진을 정하는 보강작업을 계속했다.

▼입국조차 힘든 곳에서의 취재라▼

첫 취재 대상으로 선정된 국가는 이슬람의 '우두머리'격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제부 수석기자로 아랍지역 뉴스를 전담해 온 윤양섭 기자가 첫 타자로 나섰다. 그런데 이슬람권 중 그나마 개방된 나라로 알려져 입국에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던 사우디는 아예 관광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있었다. 고민 끝에 윤 기자는 취재 비자 발급이 사실상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 '가짜 근로자'로 입국하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하지만 현지 거주인으로부터 초청장도 받고 나서, 주한사우디 대사관이 난데없이 '근로자 증명서'를 요구해 이 한달간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윤기자 대신 중동행 비행기에 가장 먼저 오른사람은 박제균 기자. 지난해 12월초 이스라엘로 출발하기 전날 밤 박 기자 부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매일 수명이 죽어 나갈 정도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 다음은 박기자가 공항에서 겪은 살벌한 입국기.

"텔 아비브로로 가기 위해 홍콩 공항에서 9시간을 기다린 뒤 지친 몸으로 이스라엘 엘 알 항공 카운터로 나가 보안요원들이 조사대 위에 세우고 '왜 가느냐' '표는 누가 끊었느냐'부터 시작해 '기자라면서 자신이 쓴 기사 복사물도 없느냐'는 등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가며 30분 이상을 '고문'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써준 검색 협조 요청서를 내미니까 이젠 다른 한국기자도 많은데 왜 당신에게만 이것을 써주었느냐고 따졌다. '이스라엘 안 가고 만다!'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올 지경에 이르렀는데, 옆에 있던 한 유럽인이' 흥분하면 손해'라고 타일렀다. 입국을 못하는 각오했으나 결국 이스라엘 외무부에서 입국허가가 나왔다. 보안요원들은 '이스라엘 항공에 유일하게 테러를 가한 단체가 일본 적군파여서 동양인들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슬람은 실제로 우리와 멀리 있었다. 입국부터 골치를 썩인 것은 요르단과 시리아를 취재한 홍성철 기자도 마찬가지. 홍 기자는 요르단으로 가던 중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무려 12시간을 대기해야 했는데, 정말로 황당한 건 공항측이 비행기를 갈아타는 승객의 여권과 티켓을 일단 압류한 뒤 탑승 직전에 돌려준다는 사실이다.

'중도의 파리'로 부상중인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을 취재한 권기태 기자는 이슬람의 순순한 문화적 특성때문에 공항에서 대책없이 기다려야 했다. 권 기자는 오만의 머스캇 공항에서도 도착하자자 환전소로 달려갔으나 정오 무렵부터 시작하는 이슬람 예배 시간에 걸려버렸다. 모든 환전소 직원들이 '예배 중'이라는 푯말을 창구에 내걸고 신기루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바레인은 '중동 개발물결의 전초기지'답게 밤이 되자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대부분 호텔과 술집의 간판들. 아프리카 동구권 무희들이 나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환락의 밤을 보며 이슬람 속의 또 다른 '세계화' 물결을 목도했다.

▼우리가 이슬람을 너무 몰랐다.▼

사실 국제부가 이슬람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우려한 것 중 하나는 '인터넷과 세계화가 판치는 21세기를 맞아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웬 이슬람 시리즈냐'는 식의 피상적인 비아냥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자칫 '유력 신문사가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점도 조금은 걱정했다. 그러나 막상 현지 취재를 다녀온뒤 기자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이슬람을 너무 몰랐다"고 시인해야만 했다. 진작 이같은 시리즈를 마련했어야한다는 자책감마져 들었다. 물론 민주화나 여권 신장 등은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 부족한게 많았지만, 그들은 코란(이슬람 성경)의 자존심 위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외피만을 보고 판단해오지 않았나하는 반성도 해야했다. 바레인의 호텔방에 앉아 원고를 마무리하던 깊은 밤. 필자보다 며칠 늦게 이라크로 떠난 신치영기자로부터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서방에는 독재자 사담 후세의 '깡패국가'로만 알려진 이라크. 신기자는 영국런던에서 1박을 하고 요르단 암만으로 가 또 하루를 잔 뒤 택시를 대절, 20시간만에 바그다드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신기자의 생생한 이라크 탐험기는 4월에 동아일보 지면을 빛내며 독자들을 또다른 새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이종훈(국제부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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