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외교 안통한다" 꼬리내린 美…유화 제스처

  • 입력 2001년 4월 6일 18시 34분


중국 주재 미국 대사가 보도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국 주재 미국 대사가
보도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국이 미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과 관련해 중국측에 대해 갑자기 눈에 띄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5일 이번 사건으로 중국 전투기와 조종사가 실종된 것에 대해 직접 ‘유감’을 표명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전날 유감을 처음 표명한 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앞서 그가 2, 3일 이틀에 걸쳐 미 정찰기와 승무원 24명의 즉각적 송환을 요구하고 미중 관계의 악화 가능성을 경고했던 것에서 확연히 후퇴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이날 승무원의 송환을 촉구하면서도 종전과 달리 ‘즉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은 데다 정찰기의 송환 문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 그는 또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가 좋은 관계를 가질 것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이 4일 파월 국무장관을 통해 중국의 첸치천(錢其琛) 부총리에게 이번 사건의 외교적 해결을 요망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은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힘을 내세운 강압 외교로는 이번 사건을 풀 수 없다는 현실적인 상황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 정찰기와 승무원들이 중국의 수중에 있는 데다 중국측 전투기와 조종사가 실종돼 중국 내의 반미(反美)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선 아무래도 양국의 처지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항구적인 정상무역관계지위(PNTR) 부여 철회와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판매, 부시 대통령의 10월 중국 방문 취소, 중국의 2008년 올림픽 유치 반대 등 나름대로의 압력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강경책을 편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취임한 지 3개월도 채 안된다. 이 때문에 미국 승무원들이 ‘인질’ 비슷하게 중국에 억류된 사태를 신속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어렵게 승리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이 더욱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자세를 낮춰 사태의 해결을 하루빨리 모색하는 방안을 찾게 된 것으로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상당수의 중국 전문가들은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중국의 문화적 전통과 체제를 감안할 때 중국 국민이 납득할 만한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정찰기와 승무원을 조기에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의 유연한 대응을 촉구해 왔다.

물론 중국은 아직은 미국의 유감표명이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다. 1999년 유고슬라비아의 중국 대사관에 대한 미국의 오폭(誤爆)이 남긴 쓰라린 기억을 채 잊기도 전에 이번 사건이 터진 만큼 사실 중국으로선 쉽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고 있는 만큼 적절한 선에서 미국의 ‘성의’를 받아들여 곧 사건의 수습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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