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대담]"남북-북미관계 속도조절론 떠오를것"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48분


미국의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후보가 사실상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국제정세와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 것인가. 동아일보는 13일 국제정치와 미국정세에 밝은 전문가 대담을 마련, 이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모색했다. 김학준(金學俊) 편집논설고문(명지대 교수·한국정치학회장)의 사회로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河英善)교수 가톨릭대 국제학부 이삼성(李三星)교수(미국학)가 참석했다.

▽김고문〓먼저 선거 이후 대통령 당선자가 사실상 확정되기까지 1개월 넘게 걸리게 된 매우 이례적인 현상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자.

▽하교수〓많은 사람들은 이번에 보여준 미국의 선거 제도와 과정이 미국 민주주의의 약점과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부시 당선자가 앞으로 제기될 정통성 문제에 적절한 치유책을 내야 하겠지만 이미 지난 1개월에는 치유의 과정이 녹아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선거는 미국 정치제도의 한계도 드러냈지만 동시에 드러난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제도의 장점이 드러난 이중적 모습이 보인다.

▽이교수〓미국 헌정주의의 기초는 인구별 대표와 주별 대표를 종합한 데 있기 때문에 고어가 전체 득표수에서는 20만표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뒤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모든 세부과정을 법적 절차를 밟아 풀어가는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힘도 볼 수 있었다.

▽김고문〓이제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한다. 미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서 달라질 부분은 무엇이겠는가.

▼의회지원 업고 강력한 정부로▼

▽이교수〓득표 차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정통성 논란이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의회를 볼 때,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이고 상원은 50대 50이지만 공화당 소속 부통령이 의장이라 사실상 공화당 우세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가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겪었던 정치적 비효율성에 비하면 의회의 지원을 받는 부시 행정부는 의외로 강력하고 효율성 높은 정부가 될 수 있다. 또 흑자 재정인 미국 정부가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이번 대선 과정에서 큰 논란거리였다. 사회복지를 강화한다는 고어의 입장과 달리 부시는 세금 감면과 국방력 강화에 신경쓰겠다는 입장이었다.

▽하교수〓국제 부문은 일반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정권을 이양했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었던 전례들이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대한반도 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될 것이다. 먼저 ‘미국적 이해’가 전면에 부각되리라 본다. 국제적 또는 지구적 이해와 충돌할 경우 단연 미국적 이해를 강조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군사적 수단을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충분히 대외정책에 활용할 것이다. 부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군사적 개입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이교수〓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다자주의적 성격이 강해 국제연합(UN) 등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 데 반해 공화당은 일방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 자신의 인식과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접근한다. 부시 당선자가 내세우고 있는 국방안보정책의 핵심은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다. 클린턴 행정부는 러시아와 맺은 탄도미사일방어협정(ABM)에서 알 수 있듯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지만 부시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협정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NMD를 밀고 나갈 것이다.

▽김고문〓공화당 행정부가 NMD와 TMD(전역미사일방어)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은 강하다. 러시아 중국 등의 반대에 직면한다면 국제 관계가 경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우리는 오늘날 미국의 정책수립가들이 제기하고 있는 ‘중국위협론’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21세기는 미―중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 동맹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中은 경쟁자" 길들이기 나설듯▼

▽하교수〓동아시아 문제에 있어 공화당의 입장은 일본 한국 호주 등 전통적 동맹국과의 관계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반면 중국은 동반자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보겠다는 것이다. 부시 당선자도 지금껏 이러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를 볼 때 대 중국 관계에 있어 부시 행정부는 과거 레이건 행정부 초기처럼 일종의 ‘길들이기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부시 행정부 초기의 미―중 관계는 삐걱거리는 모습을 띨 공산이 크고 한반도는 한층 어려운 국면에 처할 수 있다.

▽이교수〓중국에 대해서 미국이 영구정상무역관계(PNTR)를 부여할 때 미의회가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과거가 있다. 경제 무역 관계에선 클린턴이 취한 포용정책의 큰 테두리 안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안보개념은 다를 것이다. 일본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동맹에 집착하고 이를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해양패권의 핵심은 대만 문제다. 공화당은 첨단무기 대만 판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중국과 갈등의 소지가 있다. 미―중 관계는 경제와 안보 사이에서 모순과 균열이 예상된다.

▽김고문〓자연히 관심은 한반도로 옮아간다. 한반도에는 최근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자라나고 있고 냉전체제를 해체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북―미 관계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조명록차수의 백악관 방문으로 북미 공동선언도 나왔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 보장에 관한 양해가 담겨 있다. 또 미 국무장관이 역사상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위원장을 만났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지….

▽하교수〓부시가 페리보고서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가 포인트다. 부시 행정부 동아시아 참모팀의 발언을 재구성해 보면 페리보고서가 제시한 2단계 원칙에 원론적으론 동의하면서도 “클린턴 행정부는 화해중심의 1단계에만 중점을 둠으로써 견제중심의 2단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않았고 또 준비할 의사도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로 볼 때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에서는 1단계 접근기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2단계로 빠르게 옮아갈 가능성이 있다. 북의 대응도 미―북관계의 주요 변수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미사일 문제가 초점이고 북의 입장에선 평화협정체결이 관심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이 협정을 맺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하는 구조를 생각하지만, 북은 조―미 군사공동위원회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이교수〓미 공화당과 민주당은 한반도문제에 대한 대응양식에 차이를 드러낸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철학적으로 동의한다. 반면 공화당은 철학적 동조는 없다. 다만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철학적 회의를 갖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뭔가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는 특별한 행동보다는 오히려 ‘행동의 부재(inaction)’를 특징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남북 관계의 지연과 교착을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남북 관계에 주는 충격을 한국 정부가 어떻게 완화시키느냐가 열쇠다.

▽하교수〓내년 상반기 국내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남한의 경제상황은 남북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 김정일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뤄지려면 명분과 실리가 필요하다. 북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명분 면에서 이미 자주통일이 지난 정상회담에서 다뤄졌으므로 더이상 ‘선물’할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실리 면에서는 북에 대한 상당한 반대급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경제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년 남―북관계는 불가피하게 속도조절에 들어가 조정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교수〓부시행정부는 북에 대해 좀더 많은 요구조건을 내걸 것이고 이러한 긴장 속에서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이뤄지는 형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 역풍’을 완충시키도록 김대통령이 국내의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공화당,햇볕정책에 회의 짙어▼

▽하교수〓클린턴 행정부가 사용했던 관여와 확대 원칙과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봉쇄와 관여의 원칙을 취할 수 있다. 부시의 동아시아 문제 참모들은 “한국의 햇볕정책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 똑같은 행태를 취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다. 김대중정부와 부시행정부간에 보이는 대북 인식의 편차를 북한이 메워준다면 문제가 긍정적으로 풀릴 것이다. 그러나 북이 과거지향적으로 대남 대미 관계를 풀어나간다면 남한은 경제난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에 더해 한미 공조관계의 과도기적 어려움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게 된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고문〓지난 남북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강대국들이 아닌 한반도 당사자가 한반도 상황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해 갖는 이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남북의 지도자들은 남북이 일궈낸 새로운 상황이 외부 역풍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스크바로부터의 한 외신은 김위원장이 내년 봄 러시아로 먼저 가 푸틴을 만나고 난 뒤 가을에 서울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북한이 대남 관계 조절을 두고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 조짐으로 볼 수 있다.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져야 한반도 평화구조에 대해 가시적 진전이 있게 되고 이산상봉의 횟수나 규모도 늘고 민간교류도 늘어날 것이다. 또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맞아 노사갈등 등 사회적 균열현상이 불거져 나올 경우 북이 이를 전술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관점에서 대국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리〓임규진·이승재기자>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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