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금융위기 재발 우려…한국도 '태풍' 경보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50분


《대만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면서 ‘대만발 금융위기 재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대만의 주가 폭락을 주도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 요즘 국내 정치 경제 여건은 여러 측면에서 대만과 비슷하다. 대만의 주가지수인 자취안(加權)지수는 9일 6089로 고점을 찍은 뒤 8일 연속 20%가량 폭락한 끝에 20일 4845.21을 기록했다. 대만 주가지수가 5000 아래로 떨어진 것은 96년 3월 이후 4년 7개월만에 처음. 다행히 21일에는 대만 정부가 증시안정기금을 풀고 부양책을 발표해 5103으로 장을 마쳤다. 하지만 주가는 이날 개장 직후 4760선으로 내려앉는 등 여전히 하락 압력이 거세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대만 증시의 폭락세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때문. 외국인은 10∼18일에 3억4000만달러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 순매도를 촉발시킨 근본 원인은 정치환경과 경제 여건의 구조적인 취약성이다.

외국인들은 이같은 구조적인 취약성 면에서 한국을 대만과 한 묶음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언제 한국이 유탄을 맞을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서 시작해 홍콩 한국 등 이머징마켓 전체로 급속히 확산한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

일부 전문가들은 대만과 한국을 경쟁 관계에 놓고 대만 위기의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대만 증시를 이탈한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국내 증시는 악재 노출의 끝물 단계라서 이제 치부가 드러나기 시작한 대만보다는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작다.

하지만 신한증권 박효진 투자전략팀장은 “대만 증시 몰락의 반사 이득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 누릴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최근 2년간 극심한 경기 침체를 구조조정의 계기로 활용, 전화위복함으로써 가장 매력적인 투자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딘위터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최근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낡은 발전 모델과는 대비되는 새로운 발전 모델로 중국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대만은 어떤 점에서 우리나라와 닮았을까.

▽절름발이 산업구조〓대만은 ‘반도체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반도체 및 전기전자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주문생산업체인 대만반도체(TSMC)와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의 시가총액 비중은 각각 15.16%, 7.36%에 달하며 반도체 및 반도체관련주의 시가총액 비중은 모두 60%. 삼성전자 현대전자 아남반도체 등 국내 반도체주 세 종목의 20일 현재 시가총액 비중은 13.7%다.

그런데 반도체산업은 특히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라서 대만경제는 반도체 업황에 쉽게 휘둘렸다. 한국 증시가 그랬듯이 대만 증시는 6월 이후 반도체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과 반도체주식의 잇단 투자 등급 강등을 신호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취약한 금융시스템〓대만은 다른 동아시아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98∼99년에도 연 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9월초 한 은행의 부실 대출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경제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한 금융부문이 곪아 있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살로몬스미스바니에 따르면 은행권의 부실 채권 규모는 대만중앙은행이 밝힌 총여신의 10%가 아니라 15%에 달한다. 또 17개 협동조합이 모두 자본 잠식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가리워졌던 금융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은행업종지수는 9일 고점에서 23.5% 폭락했다. 벌써 3년째 금융시스템이 존폐 기로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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