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불신임안 부결]자민 주류파 "제명" 엄포 주효

  • 입력 2000년 11월 21일 01시 19분


20일 밤 일본 모리 요시로(森喜朗)내각에 대한 불신임안 표결은 ‘찻잔속의 태풍’처럼 싱겁게 끝났다. 모리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반기를 들었던 자민당 비주류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 간사장과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전 정조회장 두 사람이 이끄는 파벌이 20일 밤 본회의 표결직전 불신임안 찬성방침을 철회하고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언론들은 “깜짝 놀랐다”며 뜻밖의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가토파의 표결불참에 대해 공동으로 불신임안을 제출했던 민주 자유 공산 사회당 등 야4당은 일제히 “가토씨는 국민의 기대를 배반했다”고 비난했다. 가토파와 야마사키파의 도움으로 불신임안이 가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가토씨는 “반드시 이길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찬성방침을 포기했다”며 “찬성할 경우 파벌소속 의원들이 희생당할 가능성이 있어 명예로운 후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토씨가 ‘희생’이라고 한 것은 “만약 불신임안에 찬성할 경우 제명하겠다”는 주류파의 엄포를 의미한다. 불신임안을 가결시키지도 못하면서 제명만 당할 경우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 따라서 제명만은 피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노려보자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주류 5개파의 ‘가토 목조르기’가 성공한 셈이다.

일부에서는 가토씨와 주류파 사이에 뭔가 ‘밀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주류파에 반기를 든 가토씨에게는 절대로 정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 주류파의 분위기여서 설득력이 약하다.

불신임안이 부결됨으로써 자민당의 분당사태는 막았지만 앞으로 자민당내 주류와 비주류간의 갈등과 암투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 총리는 일단 정권은 연명하게 됐지만 권력투쟁 과정에서 ‘모리총리 불가론’이 확산됨으로써 내년 9월 총재선거까지 계속 집권할지는 의문이다.

한편 이날 각당 대표가 불신임안을 놓고 찬반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연립파트너인 보수당의 마쓰나미 겐시로(松浪健四郞)의원이 야유를 하던 야당측에 컵에 담긴 물을 뿌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야당의 격렬한 항의로 본회의가 두차례 정회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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