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기업인 야망과 성공]장애인 고용 구교성사장

  • 입력 2000년 8월 22일 19시 05분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기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정치 세력이 끼친 절대적 영향을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 나라(奈良). 이 지명이 국가를 뜻하는 한국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 호류사(法隆寺)에는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남긴 유명한 금당벽화가 있다. 이 일대 주민 가운데 금당벽화는 모르는 사람이 있지만 재일교포 기업 ‘GMB’(사장 구교성·具敎成·54)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취재 길에 한 행인에게 GMB 소재지를 묻자 “아, 그 자동차부품 회사요?” 하며 길을 알려 주었다.

자동차 운전자는 알 까닭이 없는 애프터서비스용 베어링 부품 회사, 그것도 재일교포 기업이 어떻게 지역주민에게 그토록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까. 나라현 시키(磯城)군에 있는 GMB 본사에 들어서자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대지 1만여평, 건평 6000평에 이르는 널따란 공장. 작업대 곳곳에서는 땀흘려 일하는 장애인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수는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급 기능인이다. 일본 내 공장 전체 종업원 600명 가운데 장애인은 법정 고용 기준(1.8%)보다 다섯배나 많은 10%선이다.

“중요한 것은 작업능력이지, 장애 종류나 등급이 아닙니다.”

구사장의 인사 철학이다. 이 덕분에 고도성장기에도 인력난을 겪지 않았으며 지역사회의 신망을 얻었다.

사원들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수화(手話)를 익혔다. 장애인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구사장의 동생인 구교인(具敎仁·52)전무는 “75년 이후 꾸준히 장애인 고용을 늘려왔는데 그 때문에 지역주민의 신뢰가 두터워진 모양”이라며 취직철이 되면 여러 학교에서 취업담당자가 문의전화를 하거나 방문한다고 말했다. 90년 일본 노동성이 장애인고용촉진 표창장을 수여한 것을 비롯해 나라현과 장애인고용촉진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감사장과 표창장을 받았다.

이 회사가 유명한 것은 장애인을 많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본관 1층에 들어서자 GMB의 해외진출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친의 고향인 한국 창원과 중국 미국 등 4개국의 7개 현지법인이 있으며 세계 곳곳에 이 회사 제품이 안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89년 ‘글로벌 매니지먼트 비즈니스’의 약자를 따 회사이름을 바꾼 것도 해외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

GMB가 생산하는 유니버설조인트와 워터펌프는 생산량과 기술 측면에서 단연 세계 자동차 부품업계의 톱 수준이다.

사업은 57년 전 구사장의 부친이 집에 공작기계 한 대를 들여놓고 볼베어링 등 기계부품을 만들며 시작됐다. 일본 자동차의 해외수출이 활발해지던 60년대 중반에 부친 일을 돕기 시작한 구사장 형제는 제품을 들고 세계 각지를 돌며 시장을 개척했다.

“기왕 할 바에는 성장 가능성이 큰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려 했지만 당시 일본의 자동차회사는 모두 계열사에서 부품을 조달해 중소기업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어요. 마침 불어닥친 수출 붐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해외시장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란 이유로 설움을 받지 않아도 됐다. 제품 품질만으로 모든 것이 통해 신나는 일이었다.

수출에 주력한 결과 현재 총생산량의 95%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동남아시장의 20%, 유럽시장의 15%, 미국시장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조립단계에 들어가는 부품이 아닌 수리용 유니버설조인트와 워터펌프의 일본 총수출량 중 60%가 이 회사 제품이다. 초기에 2억엔 가량이었던 수출액은 지난해 150억엔을 기록했다. 70배 이상 늘어난 것. 79년에 진출한 창원공장도 종업원 600여명에 연간매출 1400억원에 이르는 등 해외 공장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수출에 주력하면서 해외시장 여건에 따라 울고 웃기도 했다. 엔고(高)와 오일쇼크 때는 주문이 격감해 도산 위기를 맞았다. 최근에는 중국과 대만의 값싼 제품이 바짝 추격해와 몹시 신경이 쓰인다.

“독자적인 신기술 개발을 통해 가격 경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고품질 제품을 만들겠습니다.”

일본 최고의 수리용 자동차부품 회사인 GMB의 목표다.

<나라〓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