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처방전 오독 막기위해 알파벳 필기연습 진풍경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한 종합병원 시더스 시나이 메디컬센터 대강당에서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필기연습 수업이 열렸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16일 이 이색적인 수업광경을 자세하게 전했다.

흰색 가운 또는 수술복 차림의 의사 50여명이 손에 펜을 쥐고 있다. 오리건 주에서 모셔온 두 명의 강사가 허공에 알파벳 ‘X’를 써 보이면 모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역시 허공에X자를 쓴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생 수업 같다.

그러나 바르게 펜 쥐는 법부터 배우는 의사도 있는 마당에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다음 단계에서 의사들은 알파벳 26자가 모두 들어간 문장 ‘A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갈색 여우가 게으른 개를 뛰어넘는다).’을 한자 한자씩 인쇄체로 쓰는 연습을 한다.

이날 3시간 동안 계속된 필기연습 교실에 붙들려 온 의사들은 이 병원 약사와 간호사들의 여론조사에서 악필 중의 악필로 꼽힌 사람들.

의사의 악필은 종종 잘못된 처방과 조제로 이어져 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실제로 6개월 전 텍사스주 법원은 한 의사에게 약품 이름을 휘갈겨 쓴 책임을 물어 수십만 달러를 배상토록 판결했다. 악필로 쓴 처방전을 잘못 알아본 약사가 엉뚱한 약품을 조제해 환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 기본적으로 의사 책임이라고 인정한 것.

지난해 말 미 의학연구소는 “의사, 간호사, 약사 사이의 그릇된 의사소통으로 매년 10만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런 위험성에 공감한 시더스 시나이 병원은 먼저 한 의사가 휘갈겨 쓴 처방전을 병원소식지에 싣고 이를 풀어내는 사람에게 호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풀어낸 사람이 없었다.

의사들도 필기교실 개설을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이 병원은 이날 수업에 붙들려 온 의사들의 글씨체를 평가한 뒤 ‘보충수업’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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