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미국인 탈출 특종사진은 오보…사진기자 시인

  • 입력 2000년 4월 24일 23시 33분


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기 하루전인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 건물 옥상에 비상 착륙한 소형 헬기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전세계에 전송됐다.

‘미 대사관 건물에서 황급히 탈출하는 미국인’이라는 설명의 이 사진은 미국의 월남전 패망을 단적으로 상징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 뉴욕타임스는 이 사진이 사실은 대사관에서 탈출하는 미국인의 모습이 아니라 대사관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탈출하는 베트남인들을 촬영한 것이라고 23일 폭로했다.

당시 이 사진을 찍었던 미 UPI통신 사진기자 허버트 반 에스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진에 담긴 현장은 미 대사관에서 반마일 가량 떨어진 곳으로 미 국제개발처(USAID) 직원과 중앙정보국(CIA) 베트남지부 부지부장이 살던 지아롱 22번가의 아파트 옥상이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이같은 사진설명을 달아 전송했지만 본사에서 구조 헬기가 착륙한 곳이 당연히 미 대사관 건물 옥상일 것으로 간주해 설명을 잘못 붙였다”고 말했다.

반 에스는 “토머스 폴가 당시 CIA 지부장이 천 반 돈 부총리 겸 국방장관 등 CIA 활동에 협력해 온 월남의 정치인 고관 장성들에게 가족을 데리고 지아롱가에 모이도록 귀띔했으며 이 연락을 받고 모여든 월남인들이 사진속의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반 에스는 “건너편 호텔 옥상에서 이 장면을 찍었으며 지아롱 22번가 아파트는 사이공 시내 미국인 탈출을 위해 선정된 10여개 집결지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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