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수파 총공세…11곳 총선결과 뒤집어

  • 입력 2000년 4월 20일 21시 39분


이란 국영 TV는 지난주 묘한 장면을 전국에 방영했다. 독일 녹색당 주최로 베를린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무희가 반라로 춤추는 모습이었다. 총선 이후 이란의 정국 방향을 토의하기 위해 열린 이 회의에는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개혁파 지식인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이 방송은 현재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란 보수파에는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의회(마츨리스)내 의원 140명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에게 서한을 보내 ‘혁명 원리를 손상시킨 이들을 법정에 세워 처단하라’고 촉구했다. 18일 보수파의 사주를 받은 테헤란 시민 수천명은 테헤란대학 앞에서 ‘미국식 개혁 옹호자에게 심판을 내리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를 두고 영국 BBC방송은 지난해 지방 선거에 이어 2월 총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뒤 위기 의식을 느껴온 보수파가 총공세에 들어갔다고 19일 분석했다.

보수파들은 입법부 사법부 혁명수호위원회를 총동원해 우선 ‘개혁파의 입’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17일 의회는 행정부가 갖고 있던 신문감독권을 정보부와 검찰에도 주는 한편 폐간된 신문을 다시 발행할 수 없도록 했다. 이번 총선에 승리한 개혁파가 장악할 새 국회 개원(5월27일)전에 미리 법안을 처리한 것. 또 검찰은 상당수 개혁파 언론인들을 소환 조사한 뒤 일부를 실형에 처했다.

혁명수호위원회는 개혁파 후보 11명의 총선 당선을 무효화했다. 2곳은 보수파 후보가 승리한 것으로 뒤집고 9곳은 결선 투표를 실시키로 했다.이런 보수파의 강공에 대해 개혁파들은“보수파가 반 개혁 쿠데타를 획책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란은 새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보혁간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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