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여객기 조종실 카메라설치 논란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3분


여객기 추락사고 원인을 빠르고 정확하게 밝혀내기 위해 미국 항공 당국이 조종실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려 하자 조종사들이 사생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고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전했다.

미 교통안전위원회(NTSB)와 연방항공국(FAA)은 지난해 10월 31일 미 동부 해안에서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 767 여객기가 추락한 것과 관련해 자살을 작정한 조종사가 고의로 추락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조종실 내에 카메라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사고원인을 신속하게 밝힐 수 있고 사고원인 조사비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 이미 워싱턴의 항공기 기술 단체인 ‘RTCA’에 카메라 설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 주도록 의뢰했다.

FAA는 RTCA 보고서를 토대로 규칙을 마련해 미 여객기는 물론 미 영공으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 여객기에 대해 적용할 예정이어서 세계 항공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제임스 홀 NTSB위원장은 “조종사의 음성기록이 블랙박스에 남아있어도 ‘계기판이 왜 이러지’하는 말만으로는 사고 원인을 밝힐 수 없다”며 카메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 여객기 노조와 조종사들은 “조종실 내에 ‘빅 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감시자)를 두는 것”이라며 “만일 카메라를 설치하면 옷걸이로 사용하겠다”며 반발했다.

노스웨스트 항공의 한 조종사는 “추락시 기내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은 잔인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델타항공의 한 조종사는 “기존 첨단 기록장비만으로도 사고원인을 충분히 밝힐 수 있다”며 “카메라가 설치되고 나면 다음에는 조종사 몸에 감지선을 설치하려 들 것”이라고 반발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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