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부호-기득권층' 워싱턴 파워게임

  • 입력 2000년 4월 6일 19시 38분


인터넷 등 첨단산업으로 떼돈을 번 신흥 부호들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대거 진출해 정치인 언론인 외교관 등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의 기득권층과 세력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미 최대의 인터넷서비스 공급업체인 아메리카 온라인(AOL)과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등 워싱턴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 관련업체의 회장 및 벤처 투자자들은 최근 자선사업 등을 통해 워싱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넥타이를 매지 않거나, 정장 차림의 파티를 외면하는 등 기존의 권위와 격식을 무시하며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 워싱턴 주류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회장(35)은 최근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이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으므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대저택을 짓고 있는 중이다.

워싱턴의 주역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에게 갑자기 뛰어든 신출내기들의 튀는 행동이 곱게 보일 리는 만무한 일. 언론계의 한 고위인사는 “주식시장이 무너져 그들이 모두 떠났으면 좋겠다” 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기업인들은 “정치인들은 돈만 밝히고 ‘디지털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지난해 상원의원들의 첨단업체 시찰을 주선했던 한 인사는 “의원들이 동물원에 가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을 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꼬집었다.워싱턴 포스트지는 5일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첨단 분야 종사자 수가 공무원보다 많아졌다”며 “금력이 정치권력과 경쟁하게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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