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앞날]옐친 '鄧小平식' 수렴청정 할까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4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러시아판 덩샤오핑(鄧小平)’이 될 것인가.

러시아 공산당이 29일 하원에서 옐친에 대한 면책특권이 위헌인지 여부를 가리는 결의안을 헌법재판소에 회부하려다 실패한 뒤 향후 옐친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산당이 문제삼은 면책특권은 지난해 말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 대행이 된 직후 서명한 ‘전임 대통령의 안전 보장에 대한 포고령’에 포함된 것으로 재임중 통치행위에 대한 기소면책과 불체포특권 및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등이 주된 내용.

그동안 공산당은 이 포고령으로 옐친이 지나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특히 옐친에 대한 예우는 그가 대통령직을 물러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것. 옐친은 여전히 모스크바 교외의 대통령 전용 별장인 고리키9에서 옛 비서와 경호원을 그대로 거느리고 살면서 국기(國旗)가 달린 리무진을 타고 다니고 있다.

언론은 정부의 요청으로 옐친을 ‘전대통령’이 아닌 ‘초대대통령’으로 부르고 있다. 푸틴은 당선 직후 옐친을 찾아가 “열심히 일하겠다”고 인사했고 옐친은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격려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 전 현직 대통령 사이라기보다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상왕(上王)’과 후계자와의 관계에 빗댈 수 있다는 것.

특히 옐친이 무심코 “대선후에도 변함 없이 푸틴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내뱉은 점이나 옐친의 둘째딸 타티아나가 “아버지는 러시아의 덩샤오핑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점 때문에 퇴임후에도 옐친이 정치에 계속 관여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부추기고 있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로만 아브라모비치, 아나톨리 추바이스 등 돈과 권력을 함께 가진 옐친 시대의 실력자들이 여전히 러시아 정치를 움직이고 있는 현실 때문에도 옐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권력을 나누어 가진 전례가 없는 러시아 특유의 권력 속성을 봐도 옐친이 언제까지나 푸틴을 쥐고 흔들 수는 없다는 예상이다. 그러나 푸틴이 옐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선언’을 하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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