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권교체]전문가 기고/국민당 운영사업 민영화 초읽기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대만이 정치발전 과정에서 51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가 대만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총통에 당선됨으로써 대만 정치의 ‘토착화’란 새로운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천수이볜의 당선요인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국민당의 ‘내홍’이다. 국민당이 분열되지 않았다면 천은 4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리덩후이(李登輝)에 반대하는 쑹추위(宋楚瑜)가 강력한 민의를 업고 국민당 주류가 지명한 롄잔(連戰)을 위협했다. 쑹은 개혁세력을 대변함으로써 대륙계 인사와 적지 않은 대만인의 지지를 받았다. 정치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롄의 정치력과 대중적 친밀감에서 쑹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둘째로 천수이볜 당선의 일등공신은 리덩후이라 할 수 있다. 천은 줄곧 ‘리덩후이 노선’을 표방함으로써 리의 정치적 자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인 리위안저(李遠哲)중앙연구원장과 대만에 호적을 둔 기업가 등 리덩후이의 인적자원이 천의 진영에 합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대만을 향한 ‘말로 하는 미사일’ 협박이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역효과를 냈다.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의 무력사용 위협이 오히려 대만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천에게 표가 몰렸다.

천수이볜은 약체 총통이 될 것이 불가피하다. 그의 득표율은 불과 39.3%로 앞으로 60%에 이르는 비지지 계층의 견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 정치는 야당의 집권으로 더욱 불확실해진 측면이 있지만 양안관계와 외교관계는 대만의 국제적 위상을 보다 명확히 하는 현실적 방향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첨단기술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기업 위주의 견실한 경제구조여서 천이 집권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민진당의 집권은 총자산이 200억달러에 이르는 국민당의 방대한 사업을 과거처럼 밀실에서 경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들 사업은 투명해질 것이며 전면적인 민영화의 길을 밟을 것이다. 당 사업의 해체는 민간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천의 집권으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대만의 ‘헤이진(黑金) 정치’가 일소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만은 국민당 통치 51년간 정경유착에 의한 ‘금권정치’로 국민의 큰 반감을 샀다.

향후 대만과 한국관계는 낙관적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천수이볜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두 야당 출신으로 상호 호감을 갖고 있는데다 천이 그동안 한국의 야당운동에 대해 존경심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리덩후이는 한국의 일방적 단교조치로 한국에 대해 배신감과 부담을 느껴왔다. 그러나 천은 이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항공노선의 재운항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릴 것으로 본다. 양국 관계는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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