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공존'저자 뮐러 내한…김경동교수와 대담

  • 입력 2000년 2월 23일 23시 25분


냉전체제 붕괴 이후 문명의 갈등이 국제관계의 주요 요소가 된다고 주장하는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새뮤얼 헌팅턴(정치학)의 문명충돌론에 맞서 ‘문명의 공존’이란 저서를 내놓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하랄트 뮐러교수(국제관계학). 그가 23일 방한해 KBS스튜디오에서 서울대 김경동교수(사회학)와 ‘21세기 문명진단’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은 3월3일 오후9시 KBS 위성2TV를 통해 방영된다. 이에 앞서 대담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NGO들이 연결망 역할"▼

▽김경동〓복잡한 세계 질서의 문제를 헌팅턴이 기독교문명 대 이슬람문명이라는 이분법으로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비판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 유형의 단순모형은 미국식 사회과학이 선호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기 쉬워요. 동방사상의 핵심적 내용 중 하나인 ‘음양변증법’처럼 좀더 복잡하고 섬세한 틀이 필요합니다. 뮐러교수께서 생각하는 국제관계의 틀은 어떤 것입니까?

▽뮐러〓이론은 현실의 복잡성에 적절히 부합해야 합니다. 각국 국민 경제의 전세계적 자본주의화, 현대 기술의 확산, 생태 시스템의 상호 연관, 국경을 초월한 통신의 증가 등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세계 질서의 변화라는 난해한 과제를 앞에 둔 우리는 복잡한 세계를 복잡한 세계관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최소한 분석틀에 국가 시장 사회의 삼각구도가 필요합니다.

▽뮐러〓실제로 국가들의 세계, 경제 세계, 사회(단체)들의 세계 등 세 개의 ‘세계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단체)들의 세계’에 속하는 ‘민간세력’의 역할은 점점 증가하고 있어요. 헌팅턴은 지나치게 종교라는 편협한 틀에 매달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다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김〓역시 분석틀의 문제겠지만 ‘문명’과 ‘문화’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헌팅턴의 실수가 ‘문명’을 독일 관념론적 개념으로 ‘문화’와 거의 동일시했다는 당신의 지적은 매우 적절합니다.

뮐러〓문명의 개념은 가치, 지향성, 예술적 생산품, 종교 등 문화의 요소들과 각 사회가 그 시대에 계속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놓은 물질적 요소들을 포함합니다. 기술의 발전단계, 경제방식, 통치체제, 사회구조, 법 체계, 가치체계, 그리고 사회의 전개방향 등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문명을 정적(靜的)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김〓문명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뮐러〓헌팅턴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문명은 정치의 행위자가 아닙니다. 문명은 세계 정치 무대에서 직접 행동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문명간의 대화에는 각 부문 비정부기구들의 역할이 큽니다. 사회의 네트워크에서 이들이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가고 있어요. 경제 및 사회 세계의 세력이 확산될수록 비서구 문명권 국가와 서구 사이의 대립은 약화되고, 문명간의 연결망은 빠른 속도로 촘촘히 얽혀 나갈 것입니다.

▽김〓정보화시대에 문화는 대중매체를 통해 전지구화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서방 중심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나 지역으로 흘러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기울어진’ 문화 접변(‘tilted’ accultu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전지구적 문화수렴 현상과 함께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나는데 최근에는 ‘아시아적 가치’도 논제로 떠올라 있지요.

▽뮐러〓우선 제각각인 여러 문명을 통일된 하나의 ‘아시아적 가치’로 선전하는 것은 의아스럽습니다. 아시아의 공통된 문명적 특징은 근대화, 특히 서구와의 접촉 및 교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현재 통치자인 엘리트들의 통치권 확보를 위해 이 개념을 구성해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방중심 문화 퍼져나가"▼

▽김〓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북한은 매우 고립된 나라이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뮐러〓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별다른 방법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상호교류를 하고 개방을 해야 합니다. 역사상 많은 문명권이 공존해 왔는데, 그 방법은 대화와 협력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대화와 협력에 관심이 있는 파트너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헌팅턴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문명의 충돌’을 사회과학의 엄밀한 연구성과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들을 해석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를 비판하는 뮐러교수의 저서도 치밀한 학술서는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현실 정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이 국제정치에 미칠 영향은 크다고 할 것이다.

<정리=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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