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륙 감동… 알코올중독자 살린 50대 트럭운전사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8시 48분


레이몬드 로렌스
레이몬드 로렌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가장 훈훈한 명절이다.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모여 한 해의 양식을 베풀어 준 신(神)에게 감사한다.

25일의 올해 추수감사절은 어느 해보다도 따뜻했다. 가장 권위 있는 신문 뉴욕타임스가 이날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로 전국을 울렸다.

뉴욕 맨해튼 39번가의 회사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는 빈센트 존스(56). 3년 전 어느 날 존스는 출근길에 25센트(약 300원)를 구걸하는 부랑자와 마주쳤다. 부랑자는 서 있기도 불편한 듯, 한 손은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구걸했다.

도심에서 부랑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 그러나 존스는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존스는 25센트 동전 두개를 주고 커피와 샌드위치도 사주었다.

부랑자에게도 ‘구역’이 있다. 이 부랑자는 날마다 39번가에 나타났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술을 사기 위해 구걸을 계속했다. 존스는 부랑자를 볼 때마다 술을 사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돈을 주었다. 어느 날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스스로 술을 사주기도 했다.

존스는 부랑자가 안타깝기도 하고 부랑자에게 한없이 끌려들어가는 듯한 자기자신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존스는 때로 “신이여, 왜 이 사람이 계속 나에게 나타납니까?”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부랑자는 레이몬드 로렌스(51). 그는 존스를 만나기 전까지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느 날 로렌스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신발을 다른 부랑자에게 빼앗겨 맨발로 길에서 자다가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모두 잘라 내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로렌스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로렌스는 열자리 숫자 전화번호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누이동생 캐설린의 전화번호였다. 캐설린도 날마다 39번가로 출근했지만 오빠가 그 거리에서 동냥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로렌스의 과거. 로렌스는 보스턴에 있는 명문 버클리 음대를 다닌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바흐의 전주곡을 멋지게 연주했던 로렌스는 알코올중독으로 파멸의 길을 걸어왔던 것.

로렌스의 어머니 알버타(73)의 소재도 확인됐다. 알버타는 고향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알버타는 날마다 동네교회에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처음에 존스는 로렌스를 바로 고향에 데려다 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존스는 로렌스를 자기 집에 데려왔다. 정성스럽게 먹여 주고 몸도 씻어 주었다. 한달동안 술을 끊게 했다. 로렌스는 거의 정상인으로 되돌아 왔다. 그제서야 존스는 로렌스를 포츠머스에 데려갔다. 10월하순이었다. 아들을 맞은 어머니 알버타의 눈에서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로렌스는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술을 갑자기 끊은 데 따른 후유증이었다. 로렌스는 3주일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추수감사절이 시작되는 주일인 21일 존스는 로렌스의 고향을 찾았다. 로렌스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자비로운 주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성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존스는 혼잣말로 “내 친구 레이몬드 로렌스”하고 부르며 조용히 교회를 빠져나갔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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