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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8일 2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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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정부가 1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7일 고르바초프에게 독일최고훈장을 준 것도 그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내는 ‘글로벌 뷰포인트’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장벽 붕괴를 무력으로 막지 않은 이유 등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특약관계에 있는 ‘글로벌 뷰포인트’의 인터뷰기사를 8일 전재(轉載)했다. 다음은 그 요지.
―베를린장벽을 붕괴시킨 최대 요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선택의 자유’다. 소련 국민은 80년대 개혁과 함께 예전에 없던 선택의 자유를 누렸다. 국내에 자유가 침투한 이상 소련은 이웃 국가나 바르샤바조약 가맹국가들이 같은 자유를 누리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동베를린 시당국은 장벽을 넘으려는 시민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서독으로 통하는 3개의 검문소를 개방했다고 89년11월10일 아침 주독일 소련대사가 나에게 보고했다. 나는 말했다. 잘된 일이다, 군대로 군중을 저지하려 하지 않은 것은 잘했다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된 민중이 냉전종결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공산주의는 왜 패망했는가.
“베를린장벽 붕괴와 공산주의 붕괴는 직접적 관계는 없다. 장벽붕괴는 소련내에 진행되고 있던 새로운 사태가 가져온 한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착수했을 당시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를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곧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88년까지 정치개혁에 나섰다. 이 정치개혁이 결국 국민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고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장례 지내게 만들었다. 자유없는 시스템은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문제가 바로 공산당내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87년 베를린을 방문해 “고르바초프서기장, 이 벽을 허물었으면 한다”고 연설했는데….
“레이건 대통령이 말한 것은 내 신념과 모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우로서의 레이건대통령의 쇼맨십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의 발언은 모스크바의 강경론자를 분개시킬 뿐이었다. 대조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보다 절제있는 접근방법을 나는 평가한다. 부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쓰레기더미 위에서 춤을 추며 승리를 자랑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것과 같은 짓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