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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3월 25일 1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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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분쟁은 국제사회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국제적인 무력충돌을 초래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근본적인 원인은 약 2백만명인 코소보주민이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로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
이중 90%가 알바니아계지만 세르비아공화국이 소수인 세르비아계를 지원하면서 알바니아계가 핍박을 받고 있다.
알바니아계는 “코소보주는 역사적으로 알바니아인의 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세르비아인들은 1389년 코소보 주도인 프리슈티나 일원에서 세르비아의 10만 대군이 오스만터키군에 전멸당한 뒤 코소보를 ‘성지(聖地)’로 신성시하고 있다.
코소보주는 74년부터 잠시 자치주의 지위를 누렸으나 89년 세르비아대통령이 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알바니아계는 독립을 위해 무력투쟁을 시작했고 밀로셰비치는 이를 무력으로 탄압했다.
97년 신유고대통령에 당선된 밀로셰비치는 지난해초부터 탄압을 한층 강화했다. 지난해 10월 잠시 갈등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올 1월 신유고군의 알바니아계 주민 학살사건으로 분쟁이 격화됐다.
최근에는 프랑스에서 세르비아공화국과 알바니아계가 두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세르비아측이 NATO군의 코소보주둔을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번 공습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강경론자들에 밀려 국제사회의 요구를 거부해온 밀로셰비치가 물러설 것”이라고 전망하는 반면 “신유고가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문제가 더욱 꼬일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