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지구촌/중동-아프리카]전쟁-테러-굶주림으로 신음

  • 입력 1998년 12월 27일 19시 38분


98년도 중동과 아프리카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기아로 얼룩진 한 해였다.

무기사찰을 둘러싼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은 올들어 두차례나 공습 위기를 겪다 마침내 12월 미사일 공격으로 표면화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산고 끝에 와일밀스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이스라엘 강경파의 반발로 이행이 불투명해졌다. 케냐와 탄자니아 주미대사관이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테러공격을 당했다.

아프리카에선 콩고민주공화국(DRC) 앙골라 시에라리온 등에서 내전이 발생했으며 수단과 소말리아에서도 내전과 가뭄으로 수십만명이 굶어 죽는 참상이 이어졌다.

▼미국와 영국의 이라크 공습〓유엔의 무기사찰 거부를 이유로 미국과 영국군이 12월16일부터 나흘간 이라크를 공습했다.

‘사막의 여우’란 작전을 통해 양국군은 크루즈 미사일과 전폭기를 동원, 이라크 전역의 군사시설을 공격했으나 당초 목표인 생화학무기시설을 제거하지 못했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는 데도 실패했다.

이라크 공습은 러시아 중국 프랑스의 반대에 부닥쳐 국제사회의 분열조짐을 낳았고 사찰제도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성추문 탄핵정국을 피하기 위해 이라크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중동평화협정 체결과 표류〓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0월23일 미국 워싱턴 근교 와이밀스에서 클린턴대통령의 중재로 ‘평화와 영토의 교환’으로 평가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PLO)헌장의 반(反)이스라엘 조항을 삭제했으나 이스라엘은 강경파들의 반발로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의 철군은 이뤄지지 않았다. 네타냐후총리는 이 평화협정안에 대한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해 불신임을 당했으며 이스라엘은 내년에 조기총선을 치르게 됐다.

▼케냐와 탄자니아 미대사관 폭탄테러와 미국의 보복〓8월7일 케냐와 탄자니아에 있는 주미대사관에 폭탄테러가 발생, 2백50여명이 사망하고 7천여명이 부상했다.

미국은 이 폭탄테러의 배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백만장자 출신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같은달 20일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있는 제약공장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테러 거점 2곳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아프리카 각국 내전〓지난 해 콩고민주공화국(DRC) 로랑 카빌라 대통령의 집권을 도왔던 투치족이 올 8월2일 카빌라정권의 홀대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카빌라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 잠비아 등 4개국이 군대를 파견하고 투치족을 후원하는 르완다 부룬디 등도 개입함으로써 콩고 내전은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DRC와 국경을 마주한 콩고공화국에서도 12월 중순 베르나르 콜레라스 전총리를 추종하는 반군이 데니스 사수 응궤소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어 양측간 교전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

앙골라에서도 94년 체결된 정부군과 반군인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UNITA)과의 휴전협정이 깨지고 반군에 의한 전투가 재개됐으며 시에라리온에서도 아메드 테잔 카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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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기자〉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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