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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27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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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明仁) 일본천황이 26일밤 일본 도쿄(東京)의 황궁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기 위해 베푼 만찬장의 분위기는 얼음처럼 냉랭했다.
장주석은 답사에서 “일본군국주의는 대외침략 전쟁이라는 잘못된 길을 걸어 중국과 다른 아시아 인민에 큰 재난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를 잊지말고 후세의 교훈이 되게 하라’는 중국격언을 소개한 뒤 “우리는 이 아픈 역사의 교훈을 영원히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황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처럼 직설적인 표현으로 ‘일본의 과거’를 추궁한 외국지도자는 없었다. 더구나 장주석은 이날 쑨원(孫文)이 입었던 중산복(中山服)을 입고 만찬에 나왔다. 그는 외국방문때 줄곳 양복을 입었다.
장주석은 27일에도 일본 각계인사와의 면담에서 “일본내에는 잘못된 과거를 잊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장주석은 ‘유연한 현실주의자’로 불린다. 외국 방문 때마다 ‘외국인 마음끌기’에 관심을 쏟았다. 그런 장주석은 왜 일본에서 평소 이미지와 다른 강경한 입장을 구사하고 있을까.
물론 일본이 공동선언에 과거 중국침략에 대한 사죄를 명문화하기를 거절한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요인도 있다는 것이 일본의 중국전문가들 시각이다.
우선 장주석의 개인적 경험. 중일전쟁 당시 그는 구 일본군 병사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군용견에 물리기도 했다. 그의 양부(養父)가 일본군에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중국내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조정자적 역할’도 한 이유라고 본다.그는 중국의 개혁파와 보수파, 대일 온건파와 강경파의 가운데에 서서 권력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대일(對日)온건파인 탕자쉬안(唐家璇)외상이 24일 중일외상회담에서 일본의 과거사 사죄를 공동선언에 포함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내에서는 거센 반발이 나왔다. 장주석이 공동선언 서명거부라는 초강수를 택한 것은 ‘힘의 균형잡기’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장주석의 계속되는 질책 앞에 일본은 당황한 기색이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일본외상은 27일 “양국간 역사인식에 차이는 없으며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뉘앙스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관방장관도 “일본이 중국에 큰 희생과 상처를 입힌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중국이 일본에 국가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 전후 일본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며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