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주제 사라마구]작품세계

  • 입력 1998년 10월 9일 07시 25분


한때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의 정복자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지금은 유럽공동체의 가난한 변방국가로 처지고 만 포르투갈. 9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76)는 그 쇠락한 조국에 영광을 안겼다. 특히 98년은 포르투갈의 위대한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를 발견한 지 5백주년이 되는 해.

사라마구가 포르투갈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여서만은 아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에 끼여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과거 위대한 세계시민이었던 포르투갈인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메시지는 또 한 사람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소설가 안토니오 로보 안투네스 등 포르투갈 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라마구는 22년 포르투갈 중부 지역에서 태어나 3세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일찍부터 습작을 시작했지만 고등학교만 마치고 기능공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위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이런 성장과정은 사라마구를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입장에 서게 했다.

사라마구는 47년 첫 소설 ‘죄악의 땅’을 발표했으나 우파독재자 살라자르 시절 내내 문학창작보다는 정치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66년 ‘가능한 시’라는 시집을 발표하면서부터. 이후 그는 시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한 작품은 79년작 ‘바닥에서 일어서서’다. 이후 ‘수도원의 비망록’(82년) ‘돌로 만든 뗏목’(86년) 등이 잇따라 크게 인기를 얻으며 그의 작품은 25개 국어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특히 18세기의 흉악한 종교재판을 그린 ‘수도원의 비망록’(영어명 ‘발타사르와 블리문다’)은 오페라 ‘블리문다’로 만들어져 9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부산외국어대 김용재교수(포르투갈어과)는 “사라마구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4개의 축은 ‘시간’ ‘초자연’ ‘담론의 연속성’ ‘여행’”이라고 분석한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속에 쓰이는 문장부호는 마침표와 쉼표 뿐.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거기에 눈에 보이는 사실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요소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지금껏 사라마구의 작품을 출판하려 했던 국내 출판사들은 이런 난해성때문에 손을 들고 말았다.

김교수는 “끊어 읽을 수 없는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단지 문학적 형식 실험이 아니라 EU가입으로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한다.

포르투갈어로 ‘향수’를 뜻하는 ‘사우다드(Saudade)’. 20세기 후반 사라마구를 비롯한 포르투갈 작가들의 작품속에서 드러나는 향수는 단지 제국의 영광을 복원하자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서만도 독재와 쿠데타, 아프리카에서의 무모한 식민지 전쟁으로 인간존재를 한없이 누추하게 만들어왔던 현재의 역사를 넘어서자는 메시아적 상상력인 것이다.

93년 리스본을 떠나 카나리아제도의 란사로테로 이주한 사라마구는 가끔 딸을 만나기 위해 리스본을 방문할 뿐 6년전 재혼한 30년 연하의 스페인기자 출신 아내 필라와 자연을 만끽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의 상념을 적은 수상록 ‘란사로테 일기’는 그의 최근 주요 작품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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