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그렇게 잘 나가던 홍콩경제. 그러나 요즘은 날개를 잃은 듯 추락하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수직으로 떨어지고 관광 요식 유통 소매업 등의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특히 아시아 최대 독립투자사인 홍콩의 페레그린그룹이 12일 파산신청을 함으로써 홍콩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미 속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홍콩의 주가지수인 항생지수는 새해 들어 하락을 계속하다 이날 페레그린 파산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하루에 무려 773.58포인트나 폭락, 8,121.06을 기록했다. 올들어 25% 이상 폭락한 항생지수는 몇주내에 7,000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계 자본으로는 최대 투자사로 설립 23년만에 문을 닫게 된 페레그린사는 미화 4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 대한 2억6천만달러의 부실채권 회수전망이 어두워지면서 경영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레그린사는 9일 회사를 살리기 위해 스위스 취리히그룹에 자사 지분 24%를 미화 2억달러에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 파산으로 몰렸다.
페레그린사가 파산으로 치닫게 된 데는 동남아 투자를 주도한 한국계 2세인 앙드레 리(32)의 무분별한 기업채권매입이 한 원인이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한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는 레만 브라더스 홍콩법인에서 채권브로커로 두각을 나타내 94년에 페레그린사에 스카우트된 인물.
페레그린 입사 후 그는 국제 정상금리보다 2∼4% 더 높은 고정이율을 주는 동남아 기업들의 채권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결국 그는 동남아 금융위기 여파로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페레그린사에 결정적인 피해를 준 장본인이 됐다는 것.
페레그린사는 한국에 ‘동방 페레그린 증권’이라는 합작법인을 갖고 있으며 북한에도 진출, 북한 대성은행과 대성―페레그린은행을 설립한 바 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 하락도 홍콩경제의 추락을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표. 주택과 사무실 가격은 지난해 가을에 비해 40% 가량 내렸으며 매물이 나와도 원매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 홍콩을 둘러싼 안팎의 상황도 점차 나빠지고 있다. 홍콩달러에 대한 투기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주가의 하락과 모기지 론(주택구입금융) 이율의 상승을 가져온다. 이는 또 부동산가격 및 부동산관련 주가의 연쇄하락을 불러온다.
홍콩경제를 얼어붙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미래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이다. 아시아 각국의 금융위기와 화폐 평가절하는 홍콩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 홍콩이 미 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를 곧 폐지하고 중국이 인민폐를 평가절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홍콩의 경제안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홍콩〓정동우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