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 극복한 지도자들/리콴유]이상사회 건설 구상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리콴유가 일생을 마치고 천국에 갔다. 그가 천국문을 두드리자 베드로가 나와 말했다. 『당신은 갯벌을 천국같이 만든 사람이니 지옥으로 가서 그곳을 개혁한 후 다시 오라는 하느님의 엄명이 계셨소』 다음날 아침 또다시 천국문이 소란스러웠다. 이번에는 지옥의 책임자 루시퍼였다. 그가 청원했다. 『제발 리콴유를 천국에서 받아주십시오. 그 자가 오자마자 나에게까지 일을 시키며 전 지옥을 쥐어흔들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한때 유행하던 리콴유에 관한 농담이다. 이 농담은 그의 지도 스타일을 가장 잘 나타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자신이 구상한 이상사회로 만들려 했던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정한 목표와 구상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주기는 했지만 결코 따라오기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국민을 채찍질하며 이끌고 달려 나간 편이었고 그 과정에서 반대세력은 탄압했다. 이점에서 그는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이기는 했지만 통치형태는 독재에 가까웠다.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그의 구상에는 때로는 편집광적인 요소마저 없지 않았다. 그대표적인 것중의 하나가 그의 집권말년에 시도했던 인위적인 출산정책이다. 우수한 두뇌의 여성에서 우수한 자녀가 출생한다고 믿는 그는 대학을 나온 여성들에게는 정책적으로 출산을 장려한 반면 교육수준이 낮은 여성들의 출산은 억제하는 정책을 썼다. 싱가포르를 유전공학적 차원에서 우수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의 통치는 한마디로 가부장적인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주택 의료 직장 노후보장 등 거의 모든 복지를 제공하는 대신 청결 질서 저축 도덕심 등 민주시민의 자율에 속하는 온갖 규범을 만들어 강제로 따르게 만들었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그가 자신의 영예와 이익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며 그가 제시하는 비전은 바른 길이라고 공감하고 있다. 그는 국가의 부강과 청렴의 상징이자 독재의 본보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와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피곤함 또한 없지 않다. 그의 요구가 너무 근엄하고 도덕적이며 엄격한 탓이기 때문이다. 90년 이후 그는 2선으로 물러났으나 싱가포르 사회는 여전히 그가 설정한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분명 갯벌위에 건설된 이상적인 도시국가다. 그러나 최근들어 지식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보다 자유스러운 사회를 동경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홍콩〓정동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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