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굴지 「월마트」의 실속 경영 ▼
국내 굴지의 Q그룹 계열 한 유통회사 직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지난달 미국 아칸소주 벤튼빌에 있는 세계적인 유통그룹 월마트의 본부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단층건물에 회장과 사장의 집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네평 남짓한 사장실엔 안락소파는커녕 검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14인치짜리 TV와 컴퓨터만이 놓여 있었다.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바로 옆의 회장방도 사정은 똑같았다. 임원들이 앉는 회의실 의자도 철제였다. 임원전용 주차구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화장실에는 노란 재생지로 만든 두루마리 화장지가 비치돼 있었다.
방문객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커피라인」. 회장을 포함한 전 임직원이 커피메이커 앞에 줄을 서서 순서대로 커피를 받아마신다고 직원들은 설명했다. 회장실과 사장실에만 1명씩 배치된 업무보조원은 외부손님을 접대할 때 이외엔 커피를 끓여오는 법이 없다는 것.
월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83조원, 순익은 2조4천억원. 국내 재계 순위 정상을 다투는 삼성과 현대그룹의 지난해 경영실적은 대략 70조원 매출에 순익 4천억∼6천억원대(금융법인 포함).
Q유통 직원들은 월마트 본부 인근의 직영매장을 둘러본 뒤에야 무엇이 월마트를 「월드 베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았는지 확실히 감을 잡았다. 고객이 찾아오는 매장만은 화려하면서도 편리하게 꾸며 놓았던 것.
『우리 기업인들은 입버릇처럼 「기업내 거품을 빼자」고 말들 합니다. 하지만 높은 분들의 의전이나 사업관행을 보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 분들의 생산성 자체가 거품인 셈이죠』(D그룹 이사)
월마트 같은 사례는 잘나가는 세계적 첨단기업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핵심 반도체인 마이크로프로세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의 앤디 글로브회장은 회사에 전용 주차장이 없다. 임직원들은 회사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좋은 주차구역을 차지한다.
미국내 최대 의약기업으로 93년까지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최우량기업에 7년 연속 선정됐던 머크사도 마찬가지. 회장과 임원들은 점심때면 사원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다닌다.
외국 첨단기업들이 의전을 따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영성과에 도움이 되지않는 의전을 따지지않을 뿐이다.
『과도한 의전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 의사결정때 생기는 거품입니다. 적자생존의 전쟁터에서 「진검승부」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쉽게 돈벌겠다는 안이한 발상 자체가 거품이죠』(丁一宰·정일재 LG경제연구원 컨설팅센터 이사)
의전상의 거품과 전략상의 거품은 서로 관련이 있다. 의전에 치우쳐 「현장경영」을 소홀히 할수록 신사업진출 전략에 거품이 많이 생기게 된다. 사업계획에 거품이 많을수록 신사업진출에 적극적이다. 한보 진로 대농 등은 모두 이러한 거품을 즐기다가 실패한 케이스.
최근엔 특히 유통분야에 거품이 잔뜩 일고 있다. 인구 30만명의 일산시에 내년엔 백화점 6개, 할인점이 9개나 들어선다. 인구 40만명의 분당에도 백화점 7개, 할인점 8개가 들어설 예정이다. 유통업계가 추산하는 적정수준은 백화점은 인구 12만명당, 할인점은 10만명에 1개꼴. 지금 재계에선 유통분야 계열사를 가진 그룹이 머지않아 휘청거릴 것이라는 우려가 공공연하다.
〈박내정기자〉
▼ LG텔레콤 정장호사장 인터뷰 ▼
『거품요, 위에서부터 빼야죠』
LG텔레콤 鄭壯皓(정장호)사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겉치레의식이 기업에도 깊이 스며들어 거품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거품은 최고경영층부터 빼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정사장은 LG정보통신 대표 시절 사장에 어울리지 않는 좁은 집무실에서 일해 방문객들을 적잖이 놀라게 했다. 그는 될수록 비서를 수행하지 않는다. 또 직원들이 브리핑차트 등 보고서류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자기과시를 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요. 허장성세죠. 위에서 분수껏 살면 기업 전체의 문화도 그렇게 변하게 마련이죠』
그는 거품의 한 사례로 사장 집무실의 방 크기가 크지 않으면 은행에서 자금 빌려주기를 꺼리는 풍토를 지적했다. 또 호텔 등의 모임에서도 외제 승용차 등 호화로운 자동차를 타고 가야 대접을 하는 문화도 문제라는 것.
『미국이나 일본의 주요 기업 최고경영진 집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 검소함과 기능을 중시하는 자세에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예요.
정사장은 최근 정보통신과 유통업종 등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적인 거품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치밀한 사업평가없이 전망이 좋다고 무조건 뛰어드는 최근의 행태가 2,3년 뒤엔 큰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관공서와 일반시민 등 사회 전반에서 거품제거 운동이 함께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