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망명/외교전 가열]中,전례없이 南北연쇄접촉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북경〓특별취재반] 지난 15일 중국외교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 벌어졌다. 이날 점심식사후 한반도담당 唐家璇(당가선)부부장은 북한대표단을 접견한데 이어 오후 2시반부터 鄭鍾旭(정종욱)대사 등 한국대표단을 1시간반에 걸쳐 만났다. 黃長燁(황장엽)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문제를 놓고 남북한 대표단을 연쇄접촉한 것이다. 토요휴무일에 그것도 외교부 부부장이 전례없이 남북한 양측을 잇따라 만난 것은 사태의 긴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황의 망명허용을 놓고 중국을 상대로한 남북한간의 외교전은 이날의 이례적 연쇄접촉으로 일단 1라운드를 마치고 이번주부터 2라운드에 접어든다. 1라운드가 자국의 입장을 중국에 강력히 전달한 것이었다면 2라운드부터는 좀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갖고 밀고 당기는 외교전의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1라운드를 마친 16일 현재 우리측대표단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아직 황의 망명문제에 대해 중국이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진상파악 등을 이유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남북한 및 중국측과의 접촉배경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朱昌駿(주창준)북한대사는 사건당일 저녁 외교부로 들어가 당부부장을 만난 반면 정종욱대사는 상당시간 당을 만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무언가 중국이 북측에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북측이 불행을 당한 입장이므로 먼저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마음이 편치않은 형편이다. 「혈맹」으로 불리는 北―中(북―중)간의 특수한 관계나 햇수로 10년째 북한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주창준의 중국내 인맥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측이 주장하고 있는 인도주의 원칙과 국제법절차에 따른 처리요구가 사실상 무산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번 사태를 정치적 망명자에 대한 처리라는 차원에서 대처하기 보다는 남북한간에 발생한 동족분규로 보는 경향이 짙다. 망명허용문제가 정치협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황의 망명요청사실을 언론에 전격발표, 중국측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초래한 것도 우리측에 불리한 요소다.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던 사건을 언론에 흘려 결과적으로 중국의 선택여지를 없애버린 한국측 처사에 중국은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 한국이 이번 사건을 국내정치에 이용한다는 중국의 불신감도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향후협상은 보다 구체적인 방안과 조건들이 오가는 가운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우리측은 즉각송환부터 제삼국경유 혹은 제삼국거주 등 4∼5개의 협상카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언제 어떤 형식으로 중국측에 제시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심지어 남북간 비밀접촉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번주 협상결과에 따라 사태의 장기화여부가 보다 분명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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