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인질극/현지·일본표정]몸값 수십억달러 요구說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페루주재 일본대사관저에 억류돼 있던 인질 2백25명이 22일(이하 현지시간)밤 9시55분부터 추가로 석방됐다. 페루 정부의 협상대표들이 이날밤 대사관저에 들어간데 이어 5대의 버스가 대사관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목격돼 인질의 추가석방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됐었다. ○…인질범들이 인질을 대규모로 석방하자 페루군은 게릴라가 인질로 위장해 탈출할 것에 대비, 삼엄한 경비를 폈는데 무장군인들이 풀려난 인질들에게 총을 겨누고 한사람 한사람 신분을 확인한 뒤 차에 태우는 모습. 석방된 인질중 한 사람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밖에 나오면 대단한 환영을 받을 줄 알았는데 게릴라한테 풀려나기보다 정부군에 받아들여지기가 더 어려웠다고 비아냥. ○…인질범들이 페루정부와 관련 없는 모든 인사를 풀어줄 것이라는 소식에 재일교포 李明浩(이명호)씨도 나올 것으로 기대, 李元永(이원영)대사 등 전직원이 비상대기하고 현장에 직원과 차량을 보내는 등 부산을 떨던 대사관측은 이씨가 이날밤 나오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자 허탈한 모습. 사건발생 이후 줄곧 철야근무를 해온 현지대사관측은 하룻밤을 더 야근하게 됐다며 씁쓸한 표정들. ○…그동안 이대사 구출을 돕기 위해 페루에 파견돼 이 나라 각계인사를 만나고 대사관의 업무를 임시로 지휘했던 曺基成(조기성)아르헨티나 대사는 이대사가 풀려남에 따라 23일 임지로 복귀하려 했으나 이대사가 아직 정신적으로 안정상태에 있지 않은데다 상황파악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현지에 더 남아 있으라는 외무부의 지시에 따라 귀임을 연기.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가장 활동적인 외교관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대사는 23일의 시상식에 불참. ○…22일 밤 대량으로 풀려난 인질들을 수송하기 위해 현장에 보내진 버스들 가운데는 한국산버스들이 끼여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이 나라에서 사용중인 시내버스중 상당수는 대우가 수출한 차량들. 길거리에서 눈에 띄는 버스 중에는 서울에서 시내버스로 사용되던 중고차도 많아 간혹 삼송리 구파발 등 한글행선지 표시가 그대로 쓰인 채 운행. ○…인질범들 또한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과테말라식」사면을 원하고 있다고 인질들은 전언. 인질석방과 인질범들의 안전한 정치적 망명 및 사면을 의미하는 과테말라식 사면은 과거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콜롬비아 및 베네수엘라에서도 여러 차례 사용됐던 전례가 있다는 것. ○…좌익게릴라들이 일본기업들에 인질들의 몸값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런던에서 발행되는 인디펜던스지가 보도. 이 신문은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 게릴라들이 일본의 미쓰비시와 NEC 및 도요타를 상대로 수십억달러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현재 인질석방을 위한 공식협상과 함께 몸값지불을 위한 협상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 이 신문은 게릴라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협상에서 몸값을 지칭하는 이른바 「전쟁세」를 스위스 등 제삼국 은행에 현금으로 입금시켜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언. 리마주재 영국대사관 대변인은 이 보도에 대해 『그같은 협상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회피했으나 이번 추가 석방 후에도 일본기업인을 집중적으로 억류한 사실로 볼 때 사실인 것 같다는 것이 현지의 분석. ○…게릴라들은 관저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탱크 공격용 소형포 등으로 무장한 외에도 줄만 잡아 당기면 즉각 터지도록 된 자폭 장치를 온몸에 감고 있는 것으로 22일 풀려난 인질이 증언. 게릴라들에게 억류됐다 풀려난 알레얀드로 톨레도는 『이들은 완전 무장돼 있다』면서 『따라서 구출 작전을 감행하는 것은 모든 인질들을 몰살시키는 미친 짓』이라고 강조. 〈리마〓李圭敏특파원〉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일본 총리는 페루 일본 대사관저 인질사건과 관련해 페루에 급파된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외상을 귀국시키고 사토 순이치(佐藤俊一)외무성 중남미국장을 현지 대책본부장으로 24일 파견키로 했다. 일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인질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이 전달됐고 △사건 해결의 제1차 책임이 페루 정부에 있다는 일 정부의 원칙이 불투명해질 우려가 있으며 △무장 게릴라들이 일본을 상대로 직접 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東京〓尹相參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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