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고전소설 속 도사 ‘전우치’와 도깨비 등 한국적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대형 신작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게임 이용률마저 떨어지면서 성장 정체에 빠진 게임업계가 K컬처로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이 신드롬을 일으키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글로벌 수용도가 높아진 만큼, 고유의 한국적 색채를 앞세워 서구권 PC·콘솔 게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판단이다.
● PC·콘솔 무대로 넓어지는 K판타지
3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대형 게임사가 한국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신작 개발에 나섰다. 크래프톤은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를 원작으로 한 오픈월드 액션 롤플레잉게임(RPG) ‘프로젝트 윈드리스’를 개발 중이다. 도깨비와 씨름, 윷놀이 등 전통 요소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치 더 웨이페어러. 넥슨게임즈 제공
넥슨 자회사 넥슨게임즈는 고전소설 ‘전우치전’을 모티프로 한 액션 어드벤처 ‘우치 더 웨이페어러’를 준비하고 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요괴, 도술, 민속 신앙을 결합한 ‘조선 판타지 액션’을 표방한다. 위메이드맥스의 자회사 매드엔진도 한국 전통 탈과 설화를 깊이 있게 다룬 RPG ‘프로젝트 탈(TAL)’로 글로벌 콘솔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전까지 국내외 게임 서사는 주로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선택했다. ‘반지의 제왕’ 등 서구 판타지 문학을 세계관의 바탕으로 삼아 엘프와 드래건, 기사, 마법 등을 기본 설정으로 했다. 이 같은 익숙한 장치들과 ‘검을 든 기사는 근거리 공격, 지팡이를 든 마법사는 원거리 공격’이라는 직관적인 전투 체계에 이용자들은 쉽게 친숙해지며 몰입감을 느꼈다. ‘중세 판타지’는 게임사들로서 문화적 이질감에 따른 리스크 없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다.
프로젝트 탈. 위메이드맥스 제공하지만 내수 시장 성장이 벽에 부딪히면서 업계 분위기도 달라졌다. 검증된 공식에만 기대온 생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확산된 것. 독창적인 지식재산권(IP)으로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장기 수익 기반을 다지려는 체질 개선 시도로도 풀이된다.
● 中 ‘오공’ 등 아시아 서사 흥행 증명
프로젝트 윈드리스. 크래프톤 제공자국 전통문화를 앞세운 아시아권 게임들이 글로벌 콘솔 시장에서 잇따라 흥행 신기록을 세운 점도 이 같은 전략 변화를 부추긴 요인이다. 중국 게임사 게임사이언스가 2024년 8월 출시한 액션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고전소설 ‘서유기’를 재해석해 출시 한 달 만에 2000만 장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웠다. 서구권 게이머에게 낯선 동양 고전을 소재로 삼았지만 압도적인 그래픽과 게임성으로 호평받으며 전통문화적 색채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앞서 일본 프롬소프트웨어의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역시 일본 전국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닌자 서사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태권도 요소를 반영한 펄어비스의 신작 ‘붉은 사막’이 최근 흥행 호조를 보이는 등 K게임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다. 뉴욕타임즈는 “K팝과 K드라마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수익성 높은 문화 수출품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이제는 K게임에 대해서도 주목할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K판타지 신작들의 성과가 한국 전통 서사가 글로벌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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