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묘가 시끄럽습니다.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건물이 올라가느냐 마느냐”를 넘어, 국가유산 보존· 도시정책· 정치적 퍼포먼스· 사진 프레이밍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종로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찾아 최근 서울시의 세운 4지구 재개발 계획에 대한 정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날 종묘 방문에는 허민 국가유산청장(앞 줄 왼족), 유홍준 국립박물관장 등이 함께 했다. 사진 속 긴 건물 뒤쪽 방향이 문제의 세운4지구.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었습니다. 장관이 세계유산 현장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데, 대법원 판결 직후라는 점에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사법부와 행정부 메시지가 다른, 혼란스러운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후 국무총리, 국립중앙박물관장, 여당 최고위원까지 차례로 종묘를 찾았습니다. 대부분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이슈로 읽히고 있습니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연예인들과 함께 종묘 현장을 찾은 장면은 더욱 상징적입니다. 정무위·법사위 소속 의원의 동선이라기보다는, 여론에 직접적으로 압박을 넣는 이미지 정치의 전형이었습니다. 정치가 ‘보여주기’ 전략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드러냅니다.
● 사진 한 장의 프레이밍 차이 — ‘wide shot’ vs ‘telephoto’
서울시의 이미지를 활용한 반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18일 서울시는 종묘에서 바라본 세운4구역 개발 예상도를 공개했는데 하늘이 크게 보이는 와이드샷으로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같은 당 소속 시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18일 오전 서울시의회 제333회 정례회 시정질문이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대형 모니터에 종묘 앞 고층건물 시뮬레이션 결과를 설명하는 오세훈 시장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다. 2025.11.18/뉴스1 국가유산청은 상대적으로 긴 렌즈를 통해 현장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둘 다 ‘사실’을 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진실을 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종묘 앞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서울시의 종묘 앞 개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세운4구역 재개발지구의 높이 규제를 완화했다. 장관과 청장이 들고 있는 자료집에는 종묘 부속 건물 뒤로 바로 고층 빌딩이 보이는 사진이 부각되어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와이드샷은 “도시와 유산이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망원샷은 “세계유산의 경관이 무너진다”는 프레임을 강화합니다. 같은 장소를 두고 정반대의 결론이 가능해지는 이유, 그것이 바로 사진의 정치성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작가들 중에는 인간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았을 때의 각도인 46도 정도의 화각을 기록하는 표준렌즈(풀프레임 기준 50mm 초점거리)로 찍은 사진만이 진실이라며 와이드 렌즈와 망원렌즈 사용을 자제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재개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시야의 문제
대법원은 서울시가 유산 인근 건축 규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는 71.9m → 141.9m까지 가능해졌습니다. 동아일보가 확보한 시뮬레이션을 보면: 종묘 정전에서 보면 건물의 절반 이상이 실제 시야에 들어온다는 분석이 있고 서울시는 “시야각 30도 밖이므로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세운4구역은 반드시 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외교 공문을 보냈고, 국가유산청은 2006년 ICOMOS의 경고 사례를 들어 “유네스코 등재 취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시는 “정밀 시뮬레이션을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시야와 시선이 종묘 앞 개발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사진과 정치의 충돌 —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는가
정치인들은 연일 현장을 찾으며 각자의 입장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장관의 현장 기자회견, 총리의 연속된 서울시정 비판 일정, 연예인과 동행한 국회의원, 서울시의 개발 시뮬레이션 공개.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현장 점검’이 아니라, 각기 다른 프레임을 이미지로 고착시키려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어떤 사진이 ‘사실’인지, 어떤 프레이밍이 ‘의도’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2017년에 세운상가 옥상에서 종묘 방향으로 촬영했을 때도, 낙후된 도시의 모습은 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했습니다. 지금 종묘 앞 고층 건물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선 방향은 문화 유산 안에서 서울 시내쪽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세운상가의 낙후된 모습에서 바라본 시선에 익숙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2017년 9월 18일 오전 서울 세운상가 ‘’다시세운 프로젝트‘’개장식 사전 프레스 투어가 열린 가운데 인부들이 최종 정리를 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100년 전에도 있었던 ‘시선의 정치’
1925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에는 ‘보고 싶은 사진 제14회 — 경복궁 근정전’이 실렸습니다. 평안북도 의주 독자 박성찬 씨가 “근정전 사진을 보고 싶다”고 보낸 편지가 계기였습니다.
신문은 근정전이 총독부 신청사에 가려져 광화문과 서로 볼 수 없게 된 현실을 애써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로 1995년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광화문과 경복궁의 원래 시야를 되찾았습니다.
총독부(중앙청) 건물을 철거할 당시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경복궁 안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려진 것에 분노했던 것인지 아니면 서울 시내에서 경복궁을 바라볼 수 없도록 막고 있는 총독부 건물에 대한 분노였는지 말입니다.
5년 여 동안의 보수 정비 공사를 마친 서울 종로구 종묘의 주 사당인 정전 준공식이 20일 오후 열렸다. 창덕궁에 있던 신주를 환안해 보수가 모두 완료됐음을 고하는 고유제도 함께 열렸다 2025년 4월 5일.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사진이 말하지 않은 세계를 읽어야 할 때
게다가 지금의 종묘 논란은 단순히 “건물이 보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적 유불리, 경제적 형평성 등도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관광부 장관 일행과 함께 논쟁의 첫날 종묘에 동행했던 서울대 김경민 교수 역시 “개발 자체는 찬성하며, 논쟁의 본질은 조망권만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파격적인 용적율을 허용해 누군가에게 과도한 이익을 허가할 수 없다는 논리도 존재합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선거를 겨냥하고 있다는 해석도 과하지 않습니다.
서울 종묘 앞 낙후지역을 142미터 높이 건물과 녹지로 재개발하려는 서울시와 정부간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21일 오후 서울 세운상가 8층에서 바라본 종묘 모습. 오른쪽 나대지가 세운4구역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이미 나대지로 변한 세운4지구를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다만 어떤 시각에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에 의해 논의가 독점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할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 살펴본 몇 장의 사진은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 그리고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종묘 앞 건물과 시야의 문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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