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는 의지력 부족 탓? 뇌가 살찐 상태를 정상으로 기억하기 때문

  • 동아닷컴
  • 입력 2025년 11월 12일 16시 08분


살을 빼려면 덜 먹고 더 움직여야 하는데, 의지력이나 노력 부족으로 살을 빼지 못한다고 보는 ‘비만 낙인’이 수십 년 동안 통용됐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점점 더 분명히 밝혀내고 있다. 비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뇌가 만든 생존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제 학술지 Cell(셀)에 중추신경계(CNS)가 신경내분비 신호를 어떻게 통합하여 에너지 항상성을 조절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기전이 어떻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항비만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리뷰 논문이 게재됐다.

연구를 주도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크리스토퍼 클레멘센(Christoffer Clemmensen) 부교수와 발데마르 브림네스 잉게만 요한센(Valdemar Brimnes Ingemann Johansen) 박사과정 연구원이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연구 결과를 쉽게 설명하는 글을 기고했다.

살을 빼기 어려운 이유? 의지의 문제가 아닌 지방을 지키려는 뇌의 문제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조상인 초기 인류에게 체지방은 생명줄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다른 동물들과 생존 경쟁을 벌이던 시절, 체지방은 생존을 위한 ‘에너지 비축 창고’였다. 너무 마르면 굶어 죽고, 너무 많으면 움직임이 둔해져 사냥이나 도망이 어려웠다.

짧게는 수십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몸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방어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현재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음식은 넘치고, 주로 앉아서 생활하며, 움직임은 선택 사항이 됐다. 과거 생존을 돕던 체중 방어 시스템이 이제는 역으로 체중 감량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비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가 살 쪘을 때 체중을 정상으로 여겨 유지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비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가 살 쪘을 때 체중을 정상으로 여겨 유지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체중 감량 후 ‘요요 현상’은 뇌의 자동 방어 반응
체중이 줄면, 몸은 이를 생존 위협으로 인식한다. 그 결과, 식욕 자극 호르몬 그렐린이 급증하고, 포만감을 주는 렙틴이 감소하며,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든다.

다시 말해, 뇌는 ‘이대로 가면 굶어 죽는다’라고 판단하여 체중을 원래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강력한 반응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이를 ’체중 기억‘(weight memory)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 후 감량한 체중을 되찾게 된다. 뇌가 그 수준을 ’정상 체중‘으로 인식해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줄었던 체중이 다시 불어났다고 의지력 부족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 이는 우리 몸의 생물학적 시스템이 체중 감소를 막기 위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만 년 동안 정교하게 진화한 뇌의 시스템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비만 치료제, 몸의 방어 시스템을 잠시 속이는 것
연구진은 셀에 게재한 논문에서 인체의 중추신경계가 장·지방·간·췌장에서 오는 호르몬 신호를 통합해 에너지 항상성을 조절하는 ‘신경내분비 지도(neuroendocrine map)’를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과 GIP(인슐린 분비 촉진 펩타이드) 같은 호르몬은 뇌에 “배가 찼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 모방한 비만 치료 약물(예: 위고비, 마운자로)은 뇌의 식욕 회로를 조절해 임상시험 결과 체중의 15~20%를 감량하는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것은 아니다.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고, 아예 체중 감량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도 있다. 또한 약을 끊으면 생물학적 방어 시스템이 다시 활성화되어 체중이 돌아오는 경우도 흔하다.
비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가 살 쪘을 때 체중을 정상으로 여겨 유지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비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가 살 쪘을 때 체중을 정상으로 여겨 유지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요요 현상’ 없는 체중 감량 약물 개발 가능성
연구진은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려는 뇌의 신호를 제어함으로써 체중 감량 효과를 지속할 수 있는 약물 개발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 최근 비만과 신진대사 관련 연구와 약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 체중’보다 ‘좋은 건강’을 목표로
연구진은 “적정 체중이 반드시 건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체중이 조금 많더라도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정신적 안정 등 좋은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심혈관·대사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중 감량과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진화의 산물로 뇌가 정교하게 작동하기에, 어쩌면 지는 게 당연한 게임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극단적인 다이어트보다는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습관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충분한 수면은 식욕 조절에 도움이 되고, 가벼운 걷기라도 혈당과 심혈관 건강을 개선에 도움이 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보답을 가져다준다.

관련 연구논문 주소: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5)006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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