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불안해서, 개원가는 돈이 돼서… CT가 늘어나는 이유 [홍은심 기자와 읽는 메디컬 그라운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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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부러져도 “MRI 찍어 보죠”… 병원 불필요한 영상 검사 흔해
소송 우려한 ‘방어 진료’도 한몫… ‘적정 검사 기준’ 마련 등 논의
의료 현장에서는 지금도 ‘불필요한 영상 검사’가 일상처럼 이뤄지고 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검사의 적응증에 맞지 않는 촬영, 전원 시 반복되는 중복 검사, 방어 진료로 인한 검사 남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뉴시스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일단 초음파부터 찍었다.”
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개원가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복부 자기공명영상(MRI)까지 찍는 경우가 흔했다. 다리가 부러져도 MRI를 권한다. 대부분 비급여라 환자 부담이 크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된다.”
의료 현장에서는 지금도 ‘필요하지 않은 영상 검사’가 일상처럼 이뤄지고 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은 검사의 적응증에 맞지 않는 촬영, 전원 시 반복되는 중복 검사, 방어 진료로 인한 검사 남용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환자에게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정승은 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대한영상의학회 회장)는 “불필요한 영상 검사의 가장 큰 원인은 방어 진료”라고 말했다. “아이 탈장인데 컴퓨터단층촬영(CT)을 안 했다고 소송이 제기된 사례가 있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면 의사들은 혹시 모를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일단 찍고 본다. 환자도 영상을 봐야 믿으니까….”
하지만 정 교수는 진짜 문제는 ‘돈이 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검사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병원은 낮은 수술비, 진료비를 영상 검사나 혈액검사로 메우게 된다.”
실제로 한 CT 촬영 수가는 단순 진찰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의료 장비를 이미 들여놓은 병원은 촬영 횟수를 늘려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상급 병원보다 개원가에서 과잉 검사가 두드러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부 의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 없이 CT·MRI를 운용하기도 한다. 전문의 판독이 없는 경우 오진 가능성이 높지만 환자는 ‘촬영을 해줬다’는 행위 자체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정 교수는 “개원가에서는 단순 통증 환자에게 팔다리 CT를 찍는 경우도 흔하다”며 “검사를 거부하면 환자가 떠나니 결국 찍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과잉 검사가 의료 자원의 낭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의료기관 간 영상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환자가 전원할 때마다 같은 부위를 다시 찍는 일도 잦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불필요한 영상 검사를 줄이기 위한 기준을 학회와 함께 마련 중이지만 방어 진료와 낮은 수가 구조 속에서는 실효성이 적다.
전문가들은 “필요한 검사와 불필요한 검사의 경계를 명확히 할 지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근거 기반의 임상 기준이 마련되고 그에 따라 시행된 진료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도 같다. 미국 내과의사재단이 주도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환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없는 검사·시술·치료를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미국영상의학회는 이미 “요통, 두통, 가벼운 외상, 경증 부비동염 환자에게 초기 CT나 MRI를 시행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대한영상의학회도 이 운동의 취지를 반영해 ‘지속가능한 영상의학 실천’ 지침을 개발 중이다. 심평원과 함께 적정 검사 기준과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 중복 촬영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많이 찍는다고 진단이 더 정확해지는 건 아니다. 현명한 선택은 ‘덜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검사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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