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맞는 공부방법 찾기[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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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교육 철학이 없는 부모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 공부를 지켜보다 보면 불안해지는 부모들이 많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내가 잘 인도하고 있나?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 불안이 지나치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부모의 귀는 점점 얇아진다. 사실 귀가 얇은 부모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부모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크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면 남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귀가 얇으면 부모는 혼란스럽다. 이 소리를 들으면 이걸 했어야 하는데 싶어서 확 불안해진다. 저 소리를 들으면 저것도 해야 하나 싶어 또 불안해진다. 이런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일정한 기준이나 지침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불안하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이도 부모 따라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학습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자료를 기본으로 주어진 자료와 여러 가지 사실 및 상황을 조합해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해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당분간은 이렇게 해보자란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런데 부모의 귀가 얇으면 그런 과정을 보여줄 수가 없다. 귀가 얇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것이 옳으면 그것 외에는 모두 잘못된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주변의 어떤 부모가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고 치자. 다른 부모들도 영어는 정말 중요하고,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영어를 잘할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얘기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교육적 신념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마다 불안해진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기준이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으면 불안했다가도 ‘아무리 영어가 중요해도 지금은 아이가 우리말로 된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니 당분간 우리말로 된 책을 더 많이 읽혀 보자’ 하며 기본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우리 형편으로는 무리니까, 집에서 내가 좀 가르쳐볼까?’ 하는 식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아이가 좀 크다면 아이와 얘기를 나눠 보기도 한다. “영어가 정말 중요해. 외국인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영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힘드니까 엄마하고 매일 조금씩 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도 부모와 함께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공부를 할 때는 모든 정보를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현재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공부를 잘할 수 없다. 귀가 얇은 부모는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정보와 걸러야 할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것은 학습에서도 직결되어 부모의 모습이 아이한테 그대로 모델링이 될 수도 있다. 공부를 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항상 불안하고, 지금 수학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어도 해야 되는데…’ 하면서 불안해한다. 부모가 이 얘기 저 얘기에 솔깃하듯, 아이도 공부할 때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목표 자극’에 집중하지 못한다. 공부를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자꾸 기웃거린다.

자신의 귀가 얇은 것 같다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얘기를 듣지 말고 경험이나 전문성, 지식의 깊이 등을 갖춘 진짜 전문가를 만나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혼란만 가중될 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아이의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공부 방법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세상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공부 방법이 있다. 그중에는 내 아이에게 맞는 것도 있지만 전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방법이 맞을지 계속 갈팡질팡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하나를 선택해서 해본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그 과정에서 오류가 보일 것이다. ‘지금 이것은 우리 아이에게 맞고 저것은 좀 맞지 않는구나’ 하는 판단이 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면 된다. 정보만 모으면 이 말이 맞는지, 저 말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육아 방법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고집을 부릴 때는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우리 아이는 의자까지 가지도 못한다. 그럴 때는 아이한테 물어본다. “너는 왜 생각하는 의자에 앉으라고 할 때마다 우니?” 아이가 “엄마가 나를 미워하잖아”라고 대답하면 ‘아, 우리 애는 이걸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이 방법은 우리 아이에게 맞지 않네’라고 판단한다. 그때는 “엄마가 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라는 거야. 그럼 어디서 생각할래?”라고 물어봐서 다른 방법을 만들면 된다.

모든 것을 천편일률적인 매뉴얼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변형하거나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정보는 참고만 할 뿐,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아이만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야 내 아이에게 맞는 공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에게 맞는 공부방법#부모#교육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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