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한석규 “두 번째 세종, 어머니로부터 풀어냈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2월 26일 06시 57분


배우 한석규가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를 세종으로 변신했다. 베테랑으로 통하는 그이지만 “연기는 나에 대한 탐구”라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석규가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를 세종으로 변신했다. 베테랑으로 통하는 그이지만 “연기는 나에 대한 탐구”라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오늘 개봉|세종 역 맡은 배우 한석규

비극 속에서 세종 길러낸 어머니
배우꿈 지원해준 우리 엄마 같아
저에게 연기란 나에 대한 탐구죠


“(최)민식이 형님이 한 말입니다. ‘연기는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말이죠. 저도 똑같아요. 연기는 결국 나를 통해 나오잖아요. 나를 알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연기는.”

배우 한석규(55)는 한 번 입을 떼면 좀처럼 끝내지 않는 특유의 만연체 화법으로 연기를 대하는 마음을 풀어냈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인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주인공이지만 왜 참여했는지, 촬영과정이 어땠는지 따위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다만 왕과 천민인 관노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같은 꿈을 꾸고 이루면서 믿음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벗”이란 단어로 정의했다. 2011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이어 다시 세종을 연기한 그이지만 걸림돌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욱 깊어진 해석과 진일보한 표현으로 보는 이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번 세종은 어머니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아버지(태종)가 어머니의 형제들을 죽이는 걸 보고 자란 이도(세종의 이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도의 어머니는 말 못할 속병이 났을 테고, 심성 착한 이도는 더 착해지려고 이를 악 물었겠죠. 절대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왕이 되지 말자고 결심했을 테고요.”

한석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막내아들인 그에게 유독 각별했다는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1년 동안 “시간을 죽이러” 정처 없이 나다닐 때도 아무 말 없이 담배 값이며 차비를 쥐어줬다.

“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였어요. 엄마가 많이 아프셨을 때인데 바람 쐬러 나갔다가 풍악을 울리는 공연을 같이 보게 됐어요. 꽤 힘드셨을 텐데도 손을 들고 춤을 추시더군요. 아! 저런 모습이 (연기하는)나에게 왔구나….”

아직 배우로서 꽃 피우지 못한 시절 한석규와 최민식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한 사람도 어머니다. 한석규는 1983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2년 선배인 최민식을 만났다.

“1989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졸업 공연을 민식이 형과 같이 했어요. 그 공연을 본 엄마가 ‘두 놈은 밥은 먹고 살겠네’ 하더라고요. 정말 민식이 형이랑 제가 연기로 밥은 먹네요. 허허! 무언가에 푸욱 빠져들어 주위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쑤욱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와 민식이 형이 그래요. 비슷한 사람입니다.”

배우 한석규.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석규.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990년대 최고의 흥행배우로 통하는 한석규이지만, 2000년대 들어 3년여 동안 연기를 멈추기도 했다. 그를 다시 자극한 사람 또한 어머니다.

“그때 농담처럼 ‘엄마! 나는 예술을 하고 싶어’라고 했더니 ‘야 이 녀석아! 돈 버는 게 예술이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의미를 저는 알죠. 엄마의 역사를 아니까요. 한국전쟁 나고 6개월 만에 미군 물건 빨래해주면서 우리를 키운 엄마이니까요. 그 분 앞에서 예술이니 돈이니 하면서 건방 떨면 안 되는 거죠.”

30년 전 일도 어제 벌어진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한석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도 올라봤고, 남모를 고민도 겪으면서 지금의 자리에 왔다. 요즘은 안방극장에서도 승승장구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비밀의 문’ 등 히트작도 여러 편이지만, 배우 인생 2막을 대표하는 작품은 흥행 여부를 떠나 ‘천문:하늘에 묻는다’가 될 것 같다.

“저에게 연기는, 나에 대한 탐구입니다. 젊을 땐 남을 연구하는 게 연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결국 연기가 좋아지려면 내가 좋아져야 하는 거죠.”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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