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오발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4월 11일 06시 57분


이범선 작가의 소설을 옮긴 영화 ‘오발탄’은 전쟁 이후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전문가들은 “현대사의 비극을 그려낸 걸작” “투철한 작가의식과 시대정신으로 담아낸 분단의 현실”이란 평가를 내놨다.
이범선 작가의 소설을 옮긴 영화 ‘오발탄’은 전쟁 이후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전문가들은 “현대사의 비극을 그려낸 걸작” “투철한 작가의식과 시대정신으로 담아낸 분단의 현실”이란 평가를 내놨다.
■ 리얼리티+다양한 실험…“영원히 세련된 영화”

이범선 작가 소설을 영화 옮겨
강렬하고 깊이 있는 현실 묘사
전쟁 직후 부조리한 사회 그려
롱테이크 기법 등 새 시도 극찬


1919년 10월27일 ‘의리적 구토’ 이후 시작된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걸작을 관객에게 선사해왔다. 당대 대중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진한 감동과 웃음과 눈물을 안겨준 대표적 작품이 여기 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감독, 제작자, 평론가 등 100인의 영화 전문가들에게 한국영화 100년, 그 최고의 작품을 꼽아 달라고 요청해 얻은 답변이기도 하다. 그 걸작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가자! 가자!”

늙고 병든 어머니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자꾸만 “가자”는 말만 되뇌던 끝에서 어머니는 절규한다.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일까. 절망적으로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절규는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절망일 뿐이다.

유현목 감독의 1961년작 ‘오발탄’. 작가 이범선의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는 가난한 월급쟁이인 장남 철호(김진규)와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동생 영호(최무룡)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전쟁이 끝난 뒤 회계 관련 일을 하는 월급쟁이 계리사 철호는 정신이상을 앓는 노모,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와 어린 딸, 상이용사인 실업자 영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사는 약혼자로부터 파혼당한 여동생 명숙의 일상을 꾸려가는 가장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독한 치통을 치료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그는 가난하고 또 가난하다.

치통이 더해갈수록 삶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한다. 명숙은 양공주가 되어 버리고, 영호는 은행을 털려다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아이를 낳으려던 아내까지 끝내 숨을 거두는, 더없이 절망스런 삶. 그때서야 치통의 근원을 뽑아내지만 그것 역시 출혈의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지만 도대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철호에게 기사는 “오발탄 같은 손님”이라며 비난한다. 철호는, 이제, 다시, 어디론가 갈 수는 있는 것일까.

철호와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처럼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하는 전후 소시민들의 상징이다. 뼈아픈 가난과 절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분단과 전쟁의 상처이기도 하다. 유현목 감독은 그 상처의 상징을 통해 전쟁 직후 비참한 현실에 놓인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풍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덕분에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전 볼 수 없었던 지적이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분단 등 현대사의 비극을 그려낸 걸작”(심재명 명필름 대표), “전쟁의 황폐함과 비참함을 표현”(김호선 감독), “투철한 작가의식과 시대정신으로 담아낸 분단 현실”(김종원 영화평론가) 등 작품을 향한 찬사는 최고의 리얼리즘 영화라는 데에까지 다다른다. 강렬한 현실 묘사를 통해 당대의 아픔과 절망을 강렬한 메시지로 승화시킨 것이다.

유현목 영화감독.
유현목 영화감독.

유현목 감독과 ‘오발탄’에 대한 찬사는 이 같은 내용적 구성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감독은 롱 테이크(단절 없이 길게 촬영하는 것) 기법을 통해 현실을 깊고 똑바로 들여다보려 했다. “가자! 가자!”는 어머니의 절규 위로 비행기 소음을 얹어 혼란스런 세상의 부조리를 부각시켰다. 한 장면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교차하는 몽타주 기법으로도 상징적 의미를 더하는 문학적 감수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현목 감독의 이 같은 시도와 실험은 당시로서는 “가장 새로운 시도”(곽경택 감독)와 “사회상을 반영한 현대적 영화문법의 시초”(길영민 JK필름 대표)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세월과 무관한, 영원히 세련된 예술영화”(최용배 청어람 대표)의 경지로까지 추앙받으며 한국영화사 100년의 중요하고도 뚜렷한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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