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①] 미친 세상 엎어치기…‘또라이 형사’의 통쾌한 복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2월 7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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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공의 적’의 주인공 강철중(설경구). 한국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평가 받고 있다. 미쳐가는 세상에 맞서 오로지 직관의 힘으로 경찰관의 사명감을 찾아가는 그에게 500만 관객의 지지가 쏟아졌다.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영화 ‘공공의 적’의 주인공 강철중(설경구). 한국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평가 받고 있다. 미쳐가는 세상에 맞서 오로지 직관의 힘으로 경찰관의 사명감을 찾아가는 그에게 500만 관객의 지지가 쏟아졌다.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 영화 ‘공공의 적’

‘물신의 세상’이 낳은 연쇄살인범
그 괴물을 지키는 권력의 노예들
그들을 무너뜨리는 또라이 형사
“에라이∼속이 다 후련하다”


“내 생각으로는 나 자신이 악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중략)그들에게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전혀 짐작해낼 수가 없다. 심지어 그들은 화가 나서 안면을 바꿀 때면 으레 남들 보고 악인이라고 쏘아붙이는 판이다.”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악인”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정작 그 장본인이 보기에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이 되레 “악인”일 뿐이다. 그것도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의 흉포한 자들이었다.

장본인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옛날부터도 종종 있어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뚤비뚤하게 ‘인의 도덕’(仁義 道德)이란 몇 자만 씌어 있었”던 “역사책”을 “밤새도록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제야 글자와 글자 사이에 온통 ‘식인(食人)’이란 두 글자가 빽빽이 박혀 있음을” 알았다.

오랜 세월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역사책을 들여다본 것은 “만사는 연구를 해보아야만 명백해지는 법”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그 끝에서 그는 세상과 사람들이 지닌 “식인”의 실체를 알아챘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식인의 피해에 대한 그의 의심을 피해망상쯤으로만 여겼다. 피해망상 가득한 미치광이의 시선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온전히 비칠 리 없었으니, 장본인은 그저 일기로써 이를 기록할 뿐이었다.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 온전치 못한 세상을 온전치 못한 시선으로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 루쉰은 피해망상증에 시달린 외사촌동생을 모델 삼은 1918년 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악인”이자 미치광이로 내몰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 루쉰과, 혁명가이자 사상가 루쉰을 연구한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유세종 한신대 명예교수는 공저 ‘루쉰전-루쉰의 삶과 사상’에서 ‘광인일기’가 “사람을 잡아먹는 구 사회 제도를 반대한 ‘미친 사람’의 일관된 행위를 통하여 추악한 봉건사회를 한 폭의 생생한 그림으로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봉건사회의 가족제도와 예의 도덕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몇 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봉건제도에 대하여 날카롭고 신랄한 비판”의 시선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광인이 밤잠 설쳐대며 훑어본 “역사책”은 “몇 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봉건제도”의 은유였다.

신 교수와 유 교수에 따르면 루쉰은 열강제국의 야욕으로 위기에 놓인 중국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민주공화정을 세우려던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군벌세력이 몰고 온 반혁명의 그림자가 온통 드리워진 당대 중국사회의 현실을 의미심장하게 들여다보았다. 온전한 세상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꿈은 허물어졌다. 군벌의 권력욕은 기어이 봉건사회의 폐습을 되돌려 놓으려는 것으로 향했다.

루쉰은 그런 세상을 ‘광인’의 시선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 고기를 못 먹어본 어린이가 있을까?”라며 “아이들을 구하라…”라고 썼다. 미쳐가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청년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

정말 온전치 못한 세상을 온전치 못한 시선이 아니고서는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일까.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영화 ‘공공의 적’의 한 장면. 사진제공|시네마서비스

● 무지막지한 ‘또라이’의 통쾌한 복수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테러로 무너져 내렸다. 2900여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카에다 조직이 지목됐다. 사태는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다는 의심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그러는 사이 세계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19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처음이었다. IMF 외환위기에서 갓 빠져나온 한국에도 영향이 미쳤다. 이미 강력한 경제적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실업자가 거리를 떠돌던 시기, 신자유주의로 떠밀려가는 세계적 흐름과 물신주의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 해 전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의 기운이 정착하는가 싶었던 한반도 분위기는 미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휘말려 다시 경색됐다. 동시에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갖은 ‘게이트’가 연이어 세상을 뒤흔들었다.

2001년 세상의 풍경이다.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맞아들이기를 바랐던 세상 사람들에게 21세기 초의 세상은 20세기의 그것과 별다를 것 없이 또 한 번 혼란스러웠다.

그때 나타난 한 사내. “기계공고 다니다 컨닝 해서 꼴등에서 두 번째 했던”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특채 경찰관, “강동경찰서 강력반 강철중” 형사다. 남들이 “두 계급 진급할 동안 두 계급 강등”된, 수사지침서에 적힌 갖은 수사기법을 숙지하기는커녕 압수한 마약을 되팔려는 비리 경찰관이다. “돈이 없다 그래서 패고, 말 안 듣는다 그래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 나빠, 그래서 패고! 이렇게 얻어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임을 과시할 만큼 무지막지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의 실체를 단박에 알아차렸을 때, 세상은 그를 온전치 못한 “또라이”라 낙인찍었다. 경찰관의 사명감을 지켜내기는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그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연쇄살인범은 물신의 세상이 낳은 돌연변이였다. 이런 돌연변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또라이’의 시선을 지니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대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여 대는 돌연변이의 미친 짓에 맞서려면 그만큼 무지막지함만이 필요했다. 돌연변이를 때려눕힌 뒤 그 몸 위에 자신이 되팔려던 마약을 끼얹어 통쾌한 복수의 한 판을 마감하고는 “양친 살해가 100년에,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 재미로 죽인 죄 100년, 민주경찰에 칼 들이댄 죄 15년, 다량의 마약 소지죄 추가! 사형!”이라며 제 멋대로 판결을 내릴 때, 세상은 비로소 이 ‘또라이’ 형사의 그 무지막지함에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한 발짝만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끔찍한 사태는 그 즉시 개선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로울 수 있지요. 비록 그것은 옛날부터 그랬다손 치더라도 오늘 우리들은 각별히 선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는 광인의 말. “당신들은 개과천선할 수 있소. 그것도 진심에서부터 말이오. 장차 세상은 사람을 잡아먹는 자를 용납지 않을 것이며 그런 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을 거라는 점을 명심하시오”라는 광인의 당부.

온전치 못한 세상을 온전치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온전한 세상을 드러내고자 했던 강철중이야말로 광인이 아닐까. 그렇게 시선을 비틀어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 영화로써 세상을 풍자한다는 것. 강철중이 바로 그 주역이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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