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성 “영화 속에선 악당이지만 알고 보면 귀여운 아저씨예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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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서 악역 도맡는 영화배우 김의성



배우 김의성은 “데뷔 30년이 넘었지만 아직은 쉼 없이 달려야 할 조연이라 생각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화면에 단 몇 초 얼굴을 비추는 조연, 단역 후배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배우 김의성은 “데뷔 30년이 넘었지만 아직은 쉼 없이 달려야 할 조연이라 생각한다”며 “기회가 된다면 화면에 단 몇 초 얼굴을 비추는 조연, 단역 후배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뚜벅뚜벅 만나는 장소로 걸어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 괜히 위축됐다. 뭘까, 이 어두운 기운은.

그랬다. ‘악역’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단 몇 장면만으로 ‘신 스틸러’로 등극했던 영화 ‘관상’의 한명회, ‘부산행’에선 좀비 열차에서 혼자 살아남겠노라 발버둥치던 이기적인 중년 남성, 국가를 위해서라면 조작쯤 대수롭잖게 여기는 검사나 고문 경찰….

배우 김의성(52)은 스크린 속 ‘대표 악당’으로 7년을 살아왔다. 최근에도 ‘1987’ ‘강철비’ ‘골든슬럼버’ 등 화제작에 줄줄이 얼굴을 비치며 ‘열일’한 덕분에 “한국 영화는 김의성이 나온 영화와 안 나온 영화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최근 그간의 연기 인생을 담은 ‘악당 7년’이란 인터뷰 책을 펴낸 그를 2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났다.

“절 만나면 좀 그렇죠? 하하. 다들 반응이 조심스러운 걸 보면 악역 이미지가 세긴 한가 봐요. 저, 해치지 않아요. 알고 보면 귀여운 ‘아재’랍니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연인 삼류 소설가 효섭 역을 맡으며 주목받았던 그는 이후 돌연 연기를 관두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2011년까지 한국 드라마 제작과 영화배급 사업을 했다. ‘연기 공백기’가 10년이 넘다 보니 그를 ‘늦깎이 신인’이나 ‘대기만성 조연 배우’로 아는 관객도 적잖다.

“그땐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어요. 일종의 도피였다고나 할까요. 결국 훨씬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30대 중반’이란 황금기를 놓친 거죠. 하지만 그때 계속 연기했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진 않았을 걸요? 지금 저는 전혀 지치지 않는 활기찬 50대를 보내고 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홍 감독의 ‘북촌방향’(2011년)으로 복귀한 그는 주로 악역을 소화해 왔다. “감독님과 우연히 술 한잔하다가 다시 출연하게 된 게 여기까지 왔네요. 오랜만에 돌아오니 중년이 됐고, 사실 한국 사회에서 50대 중년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주로 악한 역할입니다. 아무래도 기득권을 대변하는 나이다 보니…. 인상적인 악역을 몇 번 하고 나니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악역이 많고요.”
김의성이 연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관상’의 한명회 역. 짧은 분량으로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쇼박스 제공
김의성이 연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관상’의 한명회 역. 짧은 분량으로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쇼박스 제공

“이미지가 악당으로 고정될까 봐 앞으로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겠다”면서도 그는 여전히 악역의 매력을 줄줄이 읊었다. “착한 역은 아무래도 폭이 정해져 있고 수동적이죠. 악역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욕망이 강한 캐릭터가 연기하긴 좋거든요. 배우 잭 니컬슨 같은 배우를 꿈꿉니다. 얼굴에 악한 면과 냉소적인 면을 모두 지녔거든요.”

‘다작왕’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를 찾는 작품이 많아지며 사업할 때보다 삶은 여유로워졌다. 불과 7년 전, 베트남 사업을 잠시 접고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생수 살 돈이 없어 남산 약수터 물을 떠 마셨다. 버스비가 아까워 한겨울에 20km씩 걷기도 했다.

“약수터에 ‘음용불가’라고 써있으면 어찌나 절망감이 느껴지던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합니다. 사람들과 밥 먹을 때 돈도 낼 수 있고, 쌀도 사고 소주도 사고! 특히 주연 아닌 저 같은 조연에겐 연기가 생계니, 많이 해야죠. 아직 가려서 할 때는 아닌 거 같아요.”

김 배우는 자칫 ‘개저씨’ ‘꼰대’ 같은 격한 소리 듣기 쉬운 50대이지만 젊은 배우들과 친구처럼 지내기로 유명하다. 요즘도 소속사의 신인 배우들과 함께 연기연습을 한다.

“젊은 배우들과 교류하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에요. 나이나 경력이 많다고 대우받길 바라는 게 아니라 함께 즐겁게 일하는 게 중요하죠. ‘모셔진다’는 건 사실 외로워진다는 거거든요. 후배들이 저한테 편하게 ‘선배, 한 대 피우실래요?’ 이런 소리 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은 다들 너무 담배 달라고 해서 문제긴 한데.(웃음)”
영화 ‘부산행’의 용석 역에 “너무 얄미워 때려주고 싶다”는 관객들의 반응에 김의성은 “관람을 멈춰 달라”며 SNS에 웃음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NEW 제공
영화 ‘부산행’의 용석 역에 “너무 얄미워 때려주고 싶다”는 관객들의 반응에 김의성은 “관람을 멈춰 달라”며 SNS에 웃음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NEW 제공

젊게 사는 그답게 종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거침없이 소신 발언을 쏟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SNS를 하면 확실히 호불호가 커지긴 합니다. 나름대로의 의견도 일그러진 상태로 유통될 땐 안타깝죠. 그래도 자기가 생각하는 걸 얘기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악당으로 7년을 살아온 그에게 앞으로의 7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었다. 무척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 맡고 싶은 역할, 뭐 그런 거 없어요! 그저 사람들이 절 좀 귀엽게, 편하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말 걸고, 만만하게 보고요. 더불어 관객과 후배들이 ‘저 사람 진짜 재밌게 산다’라고 해준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행복하게 연기할래요.”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김의성#악역 전문 배우#관상#부산행#악당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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