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인간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유기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4월 2일 개봉 ‘화이트 갓’

영화 ‘화이트 갓’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배경으로 개들이 부다페스트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화이트 갓’에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배경으로 개들이 부다페스트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13세 소녀 릴리(프소터 조피어)에게 가장 큰 친구는 애완견 하겐.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조테르 산도르)에게 잠시 와있는 동안 하겐은 이리저리 구박받는다. 헝가리엔 순수혈통이 아닌 잡종견에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정책이 있기 때문. 결국 딸과 개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버지는 하겐을 내다버리고…. 홀로 남겨진 하겐은 길을 잃고 헤매다 노숙자에게 붙잡힌 뒤 어디론가 팔려간다. 릴리는 하겐을 애타게 찾지만 하겐은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컴퓨터그래픽(CG) 효과 없이 만든 가장 위대한 개 영화”라는 영국 신문 ‘더 타임스’의 평처럼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헝가리 영화 ‘화이트 갓’은 위대한진 몰라도 확실히 개 영화다. 주인공 하겐을 비롯해 온통 개 천지다. CG도 사용 안 하고 이 많은 개를 카메라에 담았다니. 일단 애견인들은 필히 보시라.

잠깐. 권하긴 했으나 막상 보고 나면 짱돌을 던질지 모르겠다. 하겐이 겪는 고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탓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란 이유로, 인간의 잣대로 가른 잡종이란 이유로 개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특히 불법 투견장에 팔려가 동족과 피를 보며 싸워야 하는 하겐의 처연함은 정면으로 응시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인가. 후반부 하겐이 유기견들과 함께 보호소를 탈출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은 꽤나 통쾌하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묘하게 하겐의 눈빛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을 이끌던 시저와 닮았다. 살짝 억지스러운 대목도 있다. 제 주인 릴리도 못 찾을 정도로 길을 헤매던 개가 분노로 각성했다고 갑자기 인간보다 똑똑해지다니. 그냥 동유럽 개그라 치고 넘어가기엔 헐거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화이트 갓’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영화다. 제목(‘White God’) 자체가 그렇다. 과거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며 신처럼 굴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린 인간이란 우월성에 사로잡혀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거리가 개들의 공격으로 텅 비어버릴 때, 인간이 세운 문명이란 게 과연 다른 생물들이 보기에도 위대할지 자문하게 된다. 지난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수상작. 15세 이상 관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화이트 갓#유기견#칸 영화제#주목할 만한 시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