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판타지’ 드라마에 꼭 한번쯤 나오는 뻔한 장면 3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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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외제차 몰고 짜잔… 거리를 헤매는 여주인공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야! 타”
② 구원의 격투 장면… 사랑하는 여인이 위기 처하거나 모욕 당하면 혈투 불사
③ 백화점 인형놀이… ‘캔디녀’ 데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옷 이리저리 입혀보기

뻔한 장면 3가지. 재벌 2세 남자는 가난한 ‘캔디녀’가 곤경에 처하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도와주거나(SBS ‘상속자들’위쪽 사진) 집적거리는 나쁜 놈을 맨주먹으로 때려눕히고(KBS ‘비밀’·가운데 사진), 파티 드레스를 집으로 보내주기도(SBS ‘주군의 태양’) 한다. KBS SBS TV 화면 촬영
뻔한 장면 3가지. 재벌 2세 남자는 가난한 ‘캔디녀’가 곤경에 처하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도와주거나(SBS ‘상속자들’위쪽 사진) 집적거리는 나쁜 놈을 맨주먹으로 때려눕히고(KBS ‘비밀’·가운데 사진), 파티 드레스를 집으로 보내주기도(SBS ‘주군의 태양’) 한다. KBS SBS TV 화면 촬영
“나, 너 좋아하냐?”

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재벌 2세 이민호는 고교생답게 단순하기 그지없는 문장으로 ‘캔디녀’ 박신혜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왕자님’ 이민호는 조각 같은 얼굴과 모델 뺨치는 몸매를 가졌지만, 정작 그가 사랑 고백을 하는 대상은 자기 집 부엌방에 사는 가정부 딸이다. 자신을 밀어내는 자존심 강한 캔디녀와 주변을 둘러싼 각종 장애물에도 왕자님은 캔디녀의 마음을 열어보려 기를 쓴다.

재벌 2세가 가난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재벌 판타지의 고전 격인 영화 ‘귀여운 여인’(1990년)에서 나온 클리셰(상투적 표현이나 상황)는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다르지만 뻔한’ 스토리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는 가난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재벌남이 대신 해주는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과 맞물려 있다.

신데렐라 드라마의 첫 번째 클리셰는 ‘인형놀이’다. 재벌남이 캔디녀를 명품숍에 데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이리저리 입혀보는 것이다. 남자는 가격이 얼마든, 옷이 몇 벌이든 그 자리에서 일시불로 척척 계산한다. 때에 따라서는 SBS ‘주군의 태양’에서처럼 드레스와 구두, 보석이 잔뜩 들어 있는 선물 상자를 캔디녀 집에 보내준다. 지난달 17일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비밀’에서도 재벌 2세 지성이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황정음을 파티에 데려가려고 백화점에 데려가 드레스를 입혀보는 장면이 나왔다.

두 번째 클리셰는 곤경에 처한 캔디녀 구해주기. ‘상속자들’에서 박신혜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미아가 될 위기에 놓이자 이민호가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짜잔’ 나타난다. “우리 집에 갈래?”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학교는 대기업 비서실장 아들도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들어오는 귀족 고교인 제국고. 이곳에 전학 와 시달림을 받는 박신혜에겐 이런 말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나를 좋아해야 해.”

전형적인 클리셰에 한국적 특성이 더해질 때도 있다. 캔디녀가 또 다른 재벌 2세에게 모욕이라도 당할라치면 왕자님들은 그 남자와 엉겨 붙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 집안끼리 맺어 놓은 왕자님의 정혼녀(예쁘지만 성격은 괴팍한)가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집안의 격렬한 반대로 헤어져도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두 남녀는 세상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서울에서 우연치 않게 잘도 마주치니까.

뻔한 스토리에 뻔한 장면을 반복하는 신데렐라 드라마를 그래도 좋다고 보는 이유는 뭘까.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재벌은 한국 드라마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소재다.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드라마를 통한 환상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또 “가끔 전형적인 캔디걸과 다른 여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도 있지만, 결국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못 벗어난다. 일반인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도달할 수 없는 재벌이라는 대상에 대한 동경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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