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 22일 개봉 ‘해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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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아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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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러해야 한다.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미켈란젤로)

영화 ‘해로’(22일 개봉)는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양극단의 기쁨과 좌절을 이어 붙였다. 사랑이란 환희의 순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그래서 부부는 미켈란젤로의 말처럼 죽음을 주체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노부부 민호(주현)와 희정(예수정)은 남편 민호의 갑작스러운 심장수술로 위기를 맞는다. 30년 한 밥맛이 왜 이 모양이냐고 아내에게 투덜대고, 가게에서 귤 하나도 꼬장꼬장하게 고르는 가부장적인 남편은 수술을 계기로 바뀐다.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며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사랑의 설렘을 다시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에 죽겠다던 아내가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채 두 달이 못 된다. 두 사람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에 휩싸인다.

영화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노부부의 뻔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토하는 모습을 남편에게 숨기려는 아내와, 아무도 없는 집이 싫어 젊은 커플들이 밤새 사랑하는 소리로 가득한 여관에서 밤을 보내는 남편의 모습이 애잔하다. ‘이 대목은 슬프니 울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롱테이크 기법을 활용한 화면을 자주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감정에 오롯이 동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노련한 두 주연배우의 실제 부부 같은 연기가 여기에 힘을 보탠다.

안정된 미장센과 인물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음악은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민호가 해질 무렵 바닷가에서 죽은 친구의 이름을 수첩에서 하나씩 지워가며 아내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인천의 덕적도와 이작도에서 담아 온 풍광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이끼’ 등을 담당한 김성복 촬영감독과 ‘접속’ ‘박쥐’ ‘클래식’ 등을 선보인 조영욱 음악감독의 솜씨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아내 없는 세상에서 살기보다는 행복하게 죽고 싶다는 남편의 말은 존엄사 논쟁에 시사점을 던진다. 선택할 수 없을 것 같던 인생의 ‘마침표’를 삶의 주인인 내가 찍을 수 있다는….

영화는 지난해 이맘때 개봉해 164만 명을 불러 모으며 로맨스그레이 영화로는 크게 성공한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여러모로 닮았다. 노인들의 사랑과 죽음을 담은 수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종태 감독은 시사회 뒤 기자간담회에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로 이해되지만 이 영화는 일상성이라는 점이 다르다. 어머니가 생각나고 아내가 생각나는 그런 쪽으로 접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작가 타우노 일리루시의 소설 ‘핸드 인 핸드’가 원작이다. 국내서도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화이트데이’,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은 젊은 연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12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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