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범죄와의 전쟁’ 최민식 “왜 이래, 나 아직도 신(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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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6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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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끝마다 “경주 최씨!” 부산 조폭과 손잡는 비리 세관원 역할
● 실제로는 전주 최씨, “그쪽(경주 최씨)에서 연락 올까 걱정도”
● “멋진 하정우, 내가 또래 여자면 사귄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줄 알았다.

그저 인터뷰인데, 배우 최민식(50) 모든 것을 동원해 답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귀에 쏙쏙 꽂히는 목소리와 큰 손동작, 얼굴의 모든 근육을 쓰고 있는 표정. 말솜씨는 또 어떤가. 두 손을 모으고 경청하게 만든다. 거기에 따뜻한 유머도 있다.

최민식이 이번에 연기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일 개봉, 감독 윤종빈)의 최익현도 달변가다.

물론 속 내용은 다르다. 최익현은 입만 열면 ‘설레발’이다. 1980년대 부산, 직장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은 뛰어난 화술과 처세술을 무기로 부산 최고 주먹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부산을 접수하기 위해 나선다.

‘범죄와의 전쟁’은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 최익현의 일대기다. “히로뽕을 일본에 내다 파는 게 애국”이라는 그의 궤변을 듣고 있자면, 실소부터 나온다.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아들 유학 보내기에 여념이 없는 이 위태로운 가장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안타깝기도 하다.

어느새 ‘악마를 보았다’, ‘올드보이’ 등에서 보여준 최민식의 무게감은 사라지고 익숙한 옆집 아저씨가 떠오른다.

- 전작 ‘악마를 보았다’ 때와 관객 반응이 다르다. 그땐 섬뜩한 살인마였는데, 지금은 어쨌든 웃음을 담당했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머가 이 영화의 강점이다. 관객들에게 무겁고 진지하게 질문을 건네는 것보다 농담처럼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는 아니고.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느낌이 왔다.”


-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생각해보자. 최익현이라는,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술자리에 합석하게 됐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영화 속에서처럼 떠든다. ‘당신, 영화배우야? 나 옛날에 부산 세관이었어’ 라면서. 최익현은 계속 떠드는 거다. 그렇게 실컷 떠들다가 ‘나 가네’하고 간다. 그때 그 아저씨의 뒷모습이 얼마나 짠하겠냐. 바로 그 느낌이다. 윤 감독에게도 물어봤다. 아는 사람이냐고. 그런데 윤 감독 아버지가 부산 경찰청의 고위 공무원이었다고 하더라. 영화에서 내가 고위 공무원 자제들에게 용돈 주는 장면이 있다. 실제 윤 감독이 어렸을 때 그랬다고 하더라. 그 당시엔 몰랐지만, 소위 머리가 굵어지니까 그게 다 로비였던 거지. 난 대본에 충실했다. 상상의 나래를 과하게 펼치면 작품과 무관한 불필요한 설정이 나온다.”

윤종빈 감독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아버지가 밖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도 그랬다. 우리 아버지도 전형적인 함경도 사나이다. 어쩔 땐 수화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씀이 없으셨다. 자식에게도 생사확인만 하셨다. 학교 시설 관련된 일을 하셨는데, 그렇게 무뚝뚝한 분이 교장 선생님과 인사하는 걸 봤다. 연기하시는 줄 알았다. 너무 다정해 보여서. 개인적 바람도 있다. 이 영화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소주 한잔하실래요?’ 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다. 30대 이상, 적어도 가정의 가진 남자라면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느낄 것이다. 단순히 깡패 영화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 최익현을 묘사하기 위해 10kg 넘게 살을 찌웠다. 지금은 그때보다 살이 빠졌다.

“그렇게 어떻게 사냐. 술을 줄였지. 그놈의 술이 ‘웬수’지. 식이 조절 하고 걷고.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거다. 내가 원하는 체형을 그려보는 거지. 옛날이나 미친 듯이 운동했지, 이제는 힘들어서 못하겠다.”

- 쟁쟁한 후배들과 함께했다. 혹시 빚졌다고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나.

“(하)정우지. 그래도 잘 나가는 친구인데. 참, 나랑 정우를 두고 신구(新舊)의 대결이라고 하던데, 신구가 어디 있냐. 난 아직도 신(新)이다. (웃음) 정우는 그릇이 그렇게 되더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진지하게 임한다. 지금 같은 마인드를 계속 유지한다면 40대를 넘으면 더 큰 배우가 될 것 같다. 내가 같은 또래 여자면, 연애 한 번 걸어 볼 텐데, 참. (웃음) 하루는 소주 마시면서 정우에게 말했다. 만약에 작품하다 필요하면 내가 한 번 들어가겠다고.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대장병’이 진짜 위험한 거다. 큰 작품들이 피를 보면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니다. 영화 시장 자체가 위축되니까. 암튼, 잘되어야 한다.”

- 극중 최익현을 협잡꾼으로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가족이다. 최민식의 동력은 뭔가.

“나 자신이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건 아니다. 관객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 이전에 나에게 연기는 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작업을 통해 아직도 하나하나 세상을 알아 가고 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 내가 맛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에게도 ‘잡숴보세요’ 라고 하지 않겠느냐.”

- 마지막으로 최익현은 쉴 새 없이 경주 최씨 충렬공파라는 걸 강조한다. 실제로는?

“난 전주 최씨다. 좀 걱정이다. 그쪽(경주 최씨 충렬공파) 집안에서 연락 오는 건 아닌지. 허허. 허구니까 그러지 않으시겠지.”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사진 |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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