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최고사’ 빵 안터졌으면 연기인생 접을 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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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07시 00분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윤필주 역으로 사랑받고 있는 윤계상이 영화 ‘풍산개’로 또 한 번 인기를 예고하고 나섰다.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윤필주 역으로 사랑받고 있는 윤계상이 영화 ‘풍산개’로 또 한 번 인기를 예고하고 나섰다.
■ ‘최고의 사랑’의 따도남 윤계상, ‘풍산개’로 짐승남 변신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 절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안되면 예능서 다시 시작하려고까지

‘풍산개’는 소년서 남자로의 성장통
대사가 별로 없어 더 끌렸어요
열악한 제작환경 밤샘촬영에 감정도 못 잡고
감독님께 내가 허수아비냐 반항하기도…하하

솔직히 듣는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나’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윤계상(33)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았다.

가수로 먼저 데뷔한 이력 덕분에 느낀 콤플렉스를 쿨하게 인정했고 자신의 이미지가 일부에게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먼저 꺼냈다. 그러면서 “억울하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다”는 여유까지 보였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풍산개’(감독 전재홍)의 주인공이자 이날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최고의 사랑’(극본 홍정은·홍미란·연출 박홍균)을 통해 연기자로 다시 주목받는 윤계상을 만났다. 드라마 속 ‘국민 훈남’ 윤필주가 막 걸어 나온 듯 훈훈한 미소를 띠었지만, 연기자로 사는 생활을 이야기할 때는 영화 속 풍산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윤계상은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게 진단했다. “나는 연극에서 출발한 전통 배우 출신이 아니어서 항상 의심 속에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고도 털어놓았다.

● ‘풍산개’ 촬영…“투쟁이었죠”

‘풍산개’는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그의 조연출이었던 전재홍 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다. 윤계상이 맡은 풍산은 남한에도, 북한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인물. 휴전선을 넘어 평양을 3시간안에 왕복하며 부탁받은 사람과 물건을 배달한다. 윤계상은 2시간이 넘는 상영동안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오직 표정과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유령 같은 남자죠. 출신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할까. 과거를 조금 알려준다면 관객이 이해하기 더 쉬웠을 텐데…. 합의점 없이 완전한 제3자로 뛰어들었어요.”

윤계상은 지난해 MBC 전쟁 드라마 ‘로드넘버원’을 찍던 중 ‘풍산개’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전재홍 감독이 “윤계상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해 ‘풍산개’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받은 배우가 그였다.

“‘로드넘버원’은 남자 흉내를 내는 소년이라면 ‘풍산개’는 그냥 남자예요. 심적인 고통은 클 거라 예상했지만 작심하고 영화에 뛰어들었어요. 대사가 없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하하.”

알려진 대로 ‘풍산개’에서 윤계상 등 연기자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영화 투자자로 나섰다. 척박한 제작 환경 탓에 드라마도 아닌데 밤샘 촬영을 하는 날도 많았다. 윤계상은 “투쟁이었다”고 촬영 기간을 돌이켰다.

“감독님이 여유 있게 감정을 잡을 시간을 주지 않을 때가 잦았어요. 중요한 장면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돌이켜야 하는데 빨리 찍자고만 하니…. 한 번은 ‘난 허수아비가 아니다. 절대 찍을 수 없다’고 버틴 적도 있어요.”

● ‘최고의 사랑’ 시놉시스 받고 눈물

윤계상은 2004년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룹 god를 떠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본격적인 연기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사랑에 미치다’부터 ‘누구세요’ ‘트리플’, ‘로드넘버원’까지 출연 드라마가 줄줄이 부진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어느 날 십년지기인 매니저 형이 심각한 얼굴로 ‘업계에서 네 위치가 흔들린다’는 말을 했어요. 상황은 인정했지만 그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죠. 연예계에서는 연기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면도 있어요. 제 이미지 때문에 욕먹는 건 억울하지 않아요. 다만 성공과 실패로만 나누는 풍토가 싫을 때가 있죠.”

윤계상은 인기를 가져다준 ‘최고의 사랑’ 출연을 결심하는 쉽지 않았던 과정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시놉시스(기획안)를 받고 눈물이 났어요. 대중성이 절실했던 때라 반드시 해야 할 작품이었지만, 한다면 지금까지 영화에서 욕심냈던 변신이 도루묵이 되지 않을까 걱정됐죠.”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하고 드라마 방송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번에도 망하면 다른 길을 찾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배수진이었다. 다행히 ‘최고의 사랑’은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그때 발언을 돌이키는 윤계상은 어떤 마음일까. “그땐 절박했어요. 또 안 되면 예능으로 방향을 틀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어요. 대신 영화는 비주류 장르로 계속하고요. 진심이었어요.”

● “숨지 않겠다. 힘을 갖고 싶다”

윤계상의 연기 욕심은 누구보다 뜨겁다. ‘집행자’, ‘조금 만 더 가까이’ 등 ‘풍산개’ 전에 출연한 저예산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은 인기를 좇아 화려한 캐릭터만 욕심내는 스타들과 방향부터 다르다. 새로운 것을 찾는 건 그의 고집과 일찌감치 세워둔 ‘10년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연기를 시작할 때 가수 출신이란 편견을 깨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다면 차근차근하자, 그 시간을 10년으로 정했어요. 날 의심하고 질타하는 사람들을 돌려놓아야 한다면 장기전이 필요해요. 언젠가 저를 배우로 인정받는 날, 부끄럽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쌓고 싶어요.”

윤계상은 요즘 “숨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건 자신감의 회복을 의미한다. “저를 배우로 생각하지 않을까봐 지레 겁먹고 인기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는 족족 다 거절하던 때도 있었어요. 이젠 주류의 달달한 드라마도 피하지 않을 거예요. 힘을 갖고 싶어요. 정말 해야 할 영화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해리 기자 (트위터 @madeinharry) gofl1024@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트위터 @beanjjun)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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