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 인증샷(1)] 이영미 “10만원 받고 노래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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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5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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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친 가창력’, 그리고 ‘카리스마의 여왕’.
이 두 문장은 뮤지컬 배우 이영미를 상징한다.
미친 듯한, 또는 듣는 이를 미치게 만드는 노래솜씨, 무대를 순식간에 휘어잡는 가공할 장악력은 그녀를 뮤지컬계의 ‘여왕’으로 등극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영미는 최근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을 냈다. 타이틀명은 ‘러브 유니버스(Love Universe)’.
뮤지컬 배우로가 아닌 대중 가수로서의 앨범이다. 지난해 일차 싱글앨범을 냈던 이영미는 이번에 한 장의 앨범 수록곡치고는 다소 많은 12곡을 담은 앨범을 발표했다.

기자가 이영미란 배우에게 흥미가 생긴 것은 이 앨범을 듣고 나서이다. 뮤지컬 ‘서편제’에 ‘동호 어머니’로 출연했던 이영미를 인상 깊게 기억하지만, 사실은 ‘뮤지컬 배우 이영미’와 ‘가수 이영미’를 별개의 인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 기대없이 듣기 시작한 앨범은 단숨에 12곡을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첫 곡 ‘멋대로 맘대로’를 듣는 순간 ‘이건, 물건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곡인 ‘폴른(Follen)’에 이어 싱글앨범 수록곡이었던 ‘안녕’, 조승우가 피처링한 ‘이 길위에 서서’로 넘어가면서 점점 귀와 머리가 또렷해졌다.

결국 마지막 곡 ‘흔적’이 끝나고 나서야 이 앨범이 지닌 주술과 같은 악력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마법에 가까웠다. 그것도 흑마법.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여왕’ 아니면 ‘마녀’이리라.


#2.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이영미 배우를 만났다. 찌개구이와 새우를 게장처럼 간장에 담근 간장새우가 유명한 집이다.

직접 만나보니 무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24시간 그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가는 숨이 막혀 이쪽으로서도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렵다.

“(기자) 엄밀히 말하면 이번이 두 번째 정규앨범이죠?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앨범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사람마다 타이밍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하며 한동안 굉장히 재미있게 살았죠.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아, 나에게 이런 게 있었지’ 싶어졌어요. 뭔가 다시 돌아가고 싶고, 찾아야할 것 같고. 남아있는 숙제같기도 하고. 타이밍이 늦게 온 거죠.”

이영미는 1995년 대학가요제에 ‘쌍투스’의 멤버로 참가해 금상을 받았다. 이후 ‘이아미’라는 예명으로 독집앨범을 내기도 했다. 지금도 온라인 음악사이트에서 이 이름을 입력하면 그녀의 초창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녀는 가수 출신 뮤지컬 배우이다.

“(기자) 그래도 뭔가 자신의 독집앨범을 빨리 내고 싶었을 것 같은데요.”

“많이 지쳐 있었어요. 일단, 20대 때에는 ‘되는 일’이 없었어요.(이 대목에서 ‘아하’하고 말았다. 너무 솔직해서) 지지리 고생을 했거든요. 노래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선거송에서 남의 코러스 … 트로트 음악 코러스도 했어요. CM송, 만화영화 주제가, 영화 OST, 드라마 OST까지. 내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 돈을 준다면 뭐든지 했어요. 10만원, 15만원 받고 다 했어요. 그땐 그것도 좋았어요.”

“대학가요제 이후 힘겨운 노래의 여행이 시작된 거죠. ‘밴드를 구성해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하자’부터 시작해 별별 얘기가 많았어요. 그러다 찾은 길이 뮤지컬이죠. 스물 일곱이었나 ….”


#3.
이영미는 ‘로마의 휴일’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후 ‘시카고’, ‘렌트’까지 세 작품에서 앙상블 배우로 무대에 섰다. 사람들은 물론 그녀의 앙상블 시절을 기억하지 못 한다.

가끔은 후배들이 당시의 프로그램 북을 들고 와 이영미에게 들이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꽤 쑥스러워진다.

인터뷰를 하며 느낀 것은, 이영미란 배우의 기억력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녀에게 일상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강물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흘러가버리면,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기대하지도 않는.

“어릴 때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나 … 여하튼 뭔가를 좋아하던 남자애랑 봤어요. 그 기억이 강렬해요. 나는 노래를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그날 ‘나중에 가수가 되면 저것도 해봐야지’하고 결심을 했죠.”

몇 년 뒤, 뮤지컬이란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던 이영미는 ‘하드록카페’를 보게 된다.

“최정원, 윤도현 … 예전에 ‘아가씨와 건달들’을 본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났죠. ‘아, 나 저거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뮤지컬 배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기자) 은근히 드센 역을 많이 맡으셨죠?”

“네 … 아니, 모르겠어요. 초반에 시작이 그래서일지도. 아니면 노래하는 스타일 때문인가.”

이영미가 앙상블이 아닌 처음으로 역할을 맡은 작품은 2002년 ‘록키호러쇼’였다. 다음은 ‘그리스’. ‘그리스’에서는 ‘리조’ 역이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제가 록을 좋아하는 줄 알아요. 사실 전 록 음악을 잘 몰라요. 소울과 블루스 베이스의 음악을 좋아하지, 록 베이스는 아니에요. 그런데 … 이런 말해도 되나. 다른 분야보다 제가 생각해도 록을 잘 표현하는 것 같아요. 흐흐”

이영미의 목소리는 힘이 충만한 허스키이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록밴드의 소리를 뚫고, 이영미의 목소리는 철사줄처럼 팽팽하게 솟구친다. 이런 파워는 남자배우들 틈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영미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허스키였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원래 목소리는 굵고 힘이 있는 쪽이긴 한데 … 굳이 비유하자면 박미경씨 쪽이라고 해야 하나. 확 찌르는 소리이긴 했는데, 허스키는 아니었죠.”

“(기자) 그렇다면 어쩌다 허스키 보이스가 되신 겁니까?”

“‘헤드윅’, ‘밴디트’ 같은 작품에서 노래를 많이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굵어지고 허스키로 바뀐 것 같아요. 여러 번 성대결절도 겪었어요. 성대가 약한 건 아닌데, 막 굴렸죠. 하하!”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의사가 “혹시 판소리 하시는 분이냐”라고 물었단다. 판소리 하는 사람과 성대가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이영미는 “득음했나 봐요”하며 웃었다.

“바뀐 내 소리가 값어치 있고,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2부에 계속됩니다)

양형모 기자(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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