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서 희망의 빛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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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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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의 노장(老將) 감독은 영화의 길에서 쉬지 않는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국내외 영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히어애프터’(24일 개봉)로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그의 이번 영화는 영어 원제(hereafter·사후에)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에 관한 보고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의 가슴에 죽음의 그늘이 가깝게 드리운 요즘 영화의 메시지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초반부의 지진해일(쓰나미) 장면 때문에 일본에서 상영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 담대한 시선, 깊어진 사유


영화는 세 인물이 마주하는 죽음의 세 가지 양상을 담았다. 미국의 심령술사 조지(맷 데이먼)는 죽음을 보는 남자다. 그는 의뢰인의 손을 잡으면 상대방이 겪은 아픔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죽음 때문에 괴롭다.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나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처까지 샅샅이 꿰뚫는 조지가 두려워 떠난다.

미모의 프랑스 방송 앵커 마리(세실 드 프랑스)는 죽음을 겪은 여자. 휴가 중 동남아에서 쓰나미를 만났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그는 ‘죽음의 모습’을 보았다. 정신을 잃었던 순간 한 줄기 빛과 그 속의 사람을 본 것이다. 그는 이 후유증으로 애인과 일자리를 잃은 뒤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으로 엮어 낸다.

영국인 마커스(조지 매클래런)는 가족의 죽음을 겪은 소년이다. 마커스는 쌍둥이 형이 자기 대신 엄마의 약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자 괴로워한다. 그는 빈방에 침대를 두 개 놓아야 안심이 될 만큼 죽은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마커스는 형을 만나기 위해 심령술사를 찾아다닌다.

다른 공간에 살고 있던 세 사람은 마리의 출판 기념회를 계기로 서로 마주친다. ‘병렬’로 전개되던 세 이야기는 이 만남을 통해 ‘직렬’로 연결되며 서서히 스토리의 전압을 높인다. 관객도 서서히 이야기에 감전되기 시작한다.

○ 이스트우드의 ‘마스터피스’

‘히어애프터’는 81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죽음을 관조한 영화다. 극중 프랑스의 여성 앵커 마리가 쓰나미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영화는 이 장면 때문에 일본에서 상영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히어애프터’는 81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죽음을 관조한 영화다. 극중 프랑스의 여성 앵커 마리가 쓰나미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영화는 이 장면 때문에 일본에서 상영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스트우드 최고의 걸작.”(뉴스위크) “이스트우드가 80세에 이승과 저승의 문제를 우아하게 표현해냈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자 현지 언론은 또다시 찬사를 보냈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영화의 총잡이 역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를 감독으로 재발견하게 한 영화는 1993년 ‘용서받지 못한 자’다. 퇴물 총잡이를 통해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이 영화로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년) ‘앱솔루트 파워’(1997년)로 잇달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에 대한 평단의 논란을 완전히 잠재웠다.

뉴욕타임스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이스트우드의 절제력”이라고 평가했듯 ‘히어애프터’는 담대한 시선으로 이승과 저승의 문제를 응시한다. ‘총잡이 출신’ 감독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불교의 윤회사상이나 천당 대 지옥이라는 기독교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그 대신 극중 인물들은 현세적 답을 찾아 생을 이어간다. 마리는 새로운 작가의 길을 찾고 애인을 만난다. 조지는 죽음을 마주하는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나눌 사람을 찾고, 마커스는 항상 형이 곁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스트우드는 오늘도 걷는다. 그는 미연방수사국(FBI)의 창설자인 제이 에드거 후버의 생애를 다룬 ‘제이 에드거’(2012년 개봉)를 촬영하고 있다. ‘히어(here)’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다하는 때는 아마도 그가 ‘애프터(after)’의 세계로 가는 날일 것 같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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