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조수미를 미치게 하는 것들] 축구? 완전 미치죠 토티에 푹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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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07시 00분


소프라노 조수미.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소프라노 조수미.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 조수미,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학창시절 가무에 미치다
지금은 목관리에 수도승처럼 살아요

노래방 가면
피터지는 마이크 쟁탈전
신의 목소리는 없어요

사랑에 미치다?
유학길에 헤어짐을 당했죠
그 이후론…
음 악이랑 연애중…하하

다시 태어나면
노래 절대 안 한다 했는데
다시 태어나도…할래요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맨 꼭대기 층의 스위트룸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랜드피아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과 녹음기를 꺼내고 있는데 누군가 걸어오며 “안녕하세요”한다. 홍보기획사 직원으로 알고 “안녕하세 …”라고 말하며 바라 보니 조수미다. 살짝 당황해 하는 기자 앞에 앉더니 그녀는 시디 한 장을 꺼낸다.

최근에 발표한 독일 가곡 앨범 ‘이히리베디히(Ich Lieve Dich)’. 앨범 출시 후 전국 4개 도시 순회공연 중인 조수미는 “아직 안 들어보셨죠? 꼭 듣고 기사 써주세요”하며 사인을 해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페라 아리아가 아닌 ‘가곡’을 부르는 조수미의 모습은 덜 익숙하다. 피아노 한 대, 잘 해야 실내악 정도의 반주로 꾸며지는 가곡의 무대는 오페라에 비해 소박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오페라의 여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 상대적으로 작은 무대에 서면 아무래도 맥이 풀리지 않을까.

“전혀요. 사실 혼자 서는 무대가 좋아요. 오페라는 함께 하는 기쁨이 있지만 전체를 위해 내가 원하는 음악성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다른 인물로 분장을 할 필요도 없고. 내 모습 그대로, 내가 원하는 노래, 관객이 원하는 노래를 부르는 게 성격에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오페라는 항상 함께 출연하는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된다. 조수미는 늘 비교 우위이다. 질투, 시기도 많이 받는다. 조수미는 “난 평화적인 성격이라 그런 민감한 일들을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어렵다”라고 했다.

조수미에게 한국 무대는 각별하다. 고국 무대에서는 자신이 발전하고,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 공연에서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곡을 부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작곡자가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악보 일부를 수정했던 곡을 조수미는 ‘원래대로’ 불러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했었다.
○ “원래 가무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사는 것 보면 나 스스로 신기해”

조수미는 인터뷰 내내 “재미없게 살고 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문제가 생기면 대체하면 그만이지만 몸은 그럴 수 없다. 1년 내내 ‘악기’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성악가의 일상은 수도승과 다를 게 없다.

“이 직업을 선택한 걸 많이 후회하죠. 원하는 일을 하는 건 좋지만 사람이 사이드로 뭔가 다른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으니까. 연주 끝나면 연습, 비행기 타고 몇 시간씩 각 나라를 여행하고, 도착하면 정신 차려서 시차, 날씨에 상관없이 또 연습. DNA가 튼튼하게 태어나지 않으면 이 일 못 해요.”

조수미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 원 없이 ‘놀아 봤던’ 사람이다. ‘나이트 라이프’도 마음껏 즐기고 살았다. 그는 “원래 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렇게 사는 거 보면 스스로도 신기하다니까요”라고 했다.

조수미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노래방. 우리 민족이 노래를 좋아하는 거야 세상이 다 아는 바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보면 확실히 체감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이 저보고 ‘신이 내린 목소리’니 뭐니 해놓고는 막상 노래방 가면 자기들끼리만 노래를 해요. ‘신이 내린 목소리’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자기가 부르겠다고 마이크를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너무 재밌어요. 저요? 노래 채점을 하거나 박수를 치죠. 하하하!”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못 부르는 조수미는 과연 스트레스 해소를 어떻게 하고 살까.

“자연과 동물을 좋아해요. 연주여행을 안 할 땐 집(이태리 로마에 있다)에서 텃밭 가꾸고, 과일을 따요. (정말요?) 그럼요. 집에 있을 때는 다 해요. 애견을 세 마리 키우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신문 사러 나갔다가만 와도 100년은 안 본 것처럼 꼬리치고 반기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적인 사랑’을 느끼죠.”
○ “여행 가방 안에 운동기구만 5kg, 아령과 스트레칭용 밴드는 필수품”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조수미는 스포츠광이다. 이태리에서 유학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그는 프로구단 AS로마의 스타 프란체스코 토티의 열혈팬이다. 2002년 월드컵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던(즉각 수락했다!) 조수미는 “사실 축구보다는 축구선수를 더 사랑한다”며 웃었다.

조수미는 건강관리도 음식보다 운동에 중점을 둔다. 묵을 호텔을 정할 때도 피트니스센터가 있는지를 먼저 체크한다. 그의 짐 가방 속에는 늘 아령, 스트레칭용 밴드 따위가 들어있다. 평소 갖고 다니는 운동기구만 5kg이다.

이제 사랑이야기. 서른두 살에 조수미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라는 자서전을 썼다. 책을 보면 대학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태리 유학을 떠난 뒤 얼마 안 가 두 사람은 헤어졌다. 조수미는 ‘헤어짐을 당했다’라고 했다. 이태리로 가는 조수미에게 자신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선물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 사람.

그 이후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조수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 분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아요. 사실 만날 수도 있었죠. 몇 번 찾아가 보기도 했으니까. 결혼해서 잘 살고 계세요. 지금 다시 그 분을 만난다든지, 그 분과 다시 뭔가 … 그런 건 불가능하죠. 조금씩 바래가는 좋은 추억일 뿐.”

조수미에게 “아직도 선물로 받은 테이프를 갖고 있냐”고 물었다. 조수미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미는 정상의 스타답지 않게(?) 스캔들 한 번 없기로도 유명하다. 일부에서는 ‘신비주의’ 얘기도 나온다.

“저도 사람인데 멋있는 사람, 정말 괜찮은 매력남을 보면 끌리죠. 그런 사람들과 저녁식사, 데이트 안 해 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아직 제 인생이 틀어질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만나지 못했어요. 하는 일이 계속 옮겨 다니는 일이다 보니 깊이 정이 들만한 기회도 없고. 198 3년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헤어짐을 당한 후로는 삶의 우선순위가 음악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크겠죠.”
○ “다시 태어나면 절대 노래 안한다고 했는데, 이젠 마음 바뀌었다”

서른이 되기 전 세계 5대 오페라극장 무대에 모두 서 보는 것이 꿈이었던 조수미는 그 꿈을 모두 이루었다. 40대에는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가 됐다. 이제 50을 앞둔 그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음악을 통해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음악을 통한 사회활동이겠죠. 동그라미를 점점 크게 그리면서 활동을 넓혀가고 싶어요. 받은 만큼 되돌려 드려야죠.”

인터뷰 말미에 조수미는 “최근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절대 노래를 안 하겠다’라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라고 했다. 노래를 해서 너무 행복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행복하다. 다시 태어나도 노래를, 노래하는 조수미로 태어나고 싶다.

‘신이 내린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의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이었다.

조수미의 동그라미는 가느다란 피아니시모의 소리만으로 3000석 대극장 구석구석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처럼 세상을 향해 멀리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 조수미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수미는 선화예술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음대에 사상 최고의 실기점수 기록을 세우며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이태리로 건너가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보렐리 등 유명 교수를 사사했다. 1986년 이태리의 유서깊은 베르디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질다역으로 데뷔한 이후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활동하고 있다. 1989년 별세한 마에스트로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들었다. 원래 본명은 조수경. 해외 활동을 위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권유로 개명했다. ‘미리엄’ ‘수지’ ‘수잔나’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한국 이름을 쓰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강력히 주장한 끝에 조수미로 정했다.

1993년 이탈리아 황금기러기상 수상
2008년 국제푸치니상 수상
2002년 한일월드컵 홍보대사
2007년 여수엑스포 홍보대사
2010년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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