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황윤정] 충무로 백여우(百女優)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1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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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와 심은하, 시대를 뛰어넘어 가장 닮은 두 여배우---①

프롤로그 :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

얼마 전까지, 내게 있어 '여배우'라는 단어의 느낌은 빌리와일더 감독의 1950년 영화 '선셋대로'의 느낌과 맞닿아 있었다.

은퇴 뒤 잊혀진 노배우 임에도 자신이 아직도 왕년의 그 화려했던 스타라고 여기며 자신만의 성에 갇혀 사는 여배우 '노마 데이몬스'. 그녀의 모습은 영화계와 배우들의 이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같은 여성, 동종 직업인으로서 보다 더 내밀하게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슬픔을 넘어선 애잔함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 '여배우들'이라는 한국 영화가 개봉됐다.

이 영화는 2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6인의 여배우들이 '영화'라는 형식을 빌어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토크멘터리'였다. 6인의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들은 '영화'라는 틀 안에서 선후배 간의 갈등, 라이벌에 대한 경쟁심, 상대적일 수 있는 인간적 소외와 고뇌, 늙어가는 것에 대한 격세지감에서부터 실제 자신들의 이혼에 대한 입장 표명에 이르기까지 여배우로서 느끼는 자기들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놓는다.

한창 공중파에서 인기 있는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의 자진납세 버전, 스페셜 극장판이었다고나 할까?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이들이 한꺼번에 출연해 사실과 허구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무대 뒤 여배우들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다소 자극적인 컨셉트를 내세웠지만 흥행에는 참패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영화에 주목한 이유는, 비록 이 영화가 관음증적인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부추기기엔 부족했을지 몰라도 '관객'이 아니라 '여배우들'에게는 그들의 운신의 폭을 크게 넓혀주었고, 이는 마땅히 여배우들의 '인권신장 토크멘터리'라 할 만 하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여배우'들을 마치 화류계에 몸을 담고 있는 '기생'들처럼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쁘기만 하고 소위 머리는 좀 빈 것 같은 '백치미'가 최고의 미덕인 줄 알았고, 조그마한 스캔들이라도 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고, 결혼하면 무조건 은퇴를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며,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마치 주홍글씨처럼 그렇게 단단하게 못을 박아 격리시켜 버렸던 그때 그 시절. 그러한 편견을 부순 그녀들은 이제 정말 영악(?!)해진 것이다.

영화 '여배우들'을 통해 그녀들은 그렇게 수근댔던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또는 비틀어서 쏟아내며 그 발칙하게 포착된 기회를 통해 재미를 넘어서서 이를 자기화 시키는 똑똑함과 영민함을 발휘했다.


다소간의 약점이 있거나, 필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배우들이 절대로 자신의 경력이나 이미지에 손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헌신으로 적당한 관심과 논란을 끌면서, 챙길 수 있는 것들을 알뜰하게 챙겨갈 수 있었던, '관객'이 아니라 '여배우들'에게 유익했던 영화가 된 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고 세상이 달라졌으며 또한 여배우들도 진화했다.

물론 아직도 아름다운 외모와 젊음이 필수조건처럼 여겨지는 여배우의 세계에서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그녀들 스스로가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조금씩 보다 당당하고 영악해지는 여배우들이 생활 속에서, 또한 작품 속에서 더 많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자리 잡아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어느 여배우의 바람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씩 생겨나는 여배우의 주름살을 세기 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발전하는 여배우의 연기와 그 깊어지는 눈빛을 지켜보면서 변함없이 사랑해줄 수 있는 '관객'들이 더 많아지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그녀들, 100명의 충무로 여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그 여배우라는 창을 통해, 한국영화의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정윤희를 추억하며
정윤희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아시아의 대표 미인으로 활약했다.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왼쪽), \'아가씨 참으세요\' 중 한 장면
정윤희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아시아의 대표 미인으로 활약했다.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왼쪽), \'아가씨 참으세요\' 중 한 장면


어릴 적,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따끈한 온돌방에서 불을 끄고 이불 속에 누워 일찍 잠이 든 동생들이 깰 새라 숨죽여 TV 영화를 보면서 혼자 얼마나 눈물을 흘려댔던지, 그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그렇게도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이것이 길지 않은 영화 감상 이력 중 영화를 보고 울어본 첫 경험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어 2탄, 3탄까지 시리즈로 나오는 것을 애타게 기다려 볼 정도로 정말 그 영화에 푸욱 빠져 살았고, 지금까지도 내 평생에 가장 슬펐던 영화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여배우 정윤희는 정말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솔직히 지금까지도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웠던 여배우는 정윤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단 한편도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아'가 그랬듯이, 그녀가 활동했던 당시에 필자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아쉽게도 안방극장에서 특선 영화 프로로 방영해 주는 영화를 본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 덕에 '간통'이란 단어를 깨우치다

1984년, 그녀 덕분에 처음으로 '간통'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연예가중계'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 유부남과의 간통 혐의로 피소, 구속 수감까지 되었던 그녀의 불륜 스캔들은 한자가 다수를 이루던 신문의 사회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하며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그 사건 이후로 그녀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이후론 가끔씩 그녀가 그 '간통' 사건의 상대와 결혼을 했고, 그 상대의 전처소생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고, 새로 둘 사이의 아이를 낳았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라는 '~카더라' 통신 정도만 들려왔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들로부터 단절과 고립을 자처했다.

동시에 어린 내 기억 속의 그녀도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갈 수밖에 없었는데, 한참의 세월이 지나 가끔씩 EBS 한국영화특선을 즐겨 보던 내 눈에 어느 날 번뜩 띈 출중한 미모의 여배우, 바로 그녀였다.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982년 작품인 '안개마을'이었다.
정진우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 출연한 정윤희
정진우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 출연한 정윤희

폭설이 쏟아지는 산간마을에서 단 12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는 그 영화 속에서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산간벽촌의 오지분교 교사로 부임해온 그녀는 하숙을 하는 이장댁 방바닥에 누워만 있어도 예뻤고, 엄청나게 쏟아진 눈으로 온통 하얀 외딴 역에서 초록 우산을 들고 하염없이 약혼자를 기다리며 서 있기만 해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고혹적이었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그러했을지니, 그녀가 한창 활동했던 당시의 뭇 남성들은 어떠했을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가? 아무튼 그 후로 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다시 찾아서 볼 정도로 한동안 그녀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의 대부분은 영상자료원을 찾아가거나, 언제 방송될지 기약이 없는 한국영화특선을 기다리지 않은 다음에는 일반적으로 구해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손쉽게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두 편이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그녀는 비슷하게도, 외딴 곳에 버려진, 야생마 같은 시골 처녀로 분했는데, 어느 첩첩 산골에 데려다 놓고, 시골티를 내기 위해 시커멓게 온갖 분장질로 떡칠을 해놔도, 그녀의 미모는 참으로 변함없이 영롱하게 빛이 났다.

그녀는 진정 연기를 못한 '백치미' 배우였나?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일찍이 그녀는 연출 없이는 쓰러지는 철저한 '연출 의존형'이어서 한 동안 '말뚝'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부족한 연기력이 도마에 오르곤 했다. 두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대사가 없거나 대사가 있다해도 몇 마디, 그것도 성우가 더빙을 한 것 같은 그런 어색한 대사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녀의 연기가 실제로 부족했던 탓인지, 아니면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이 오로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풍만하고 탄력 있는 몸매만을 기대했기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영화의 제목에서 풍겨지듯, 서로 닮은 듯한 두 영화에서 그녀가 여배우로서 제 몫을 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소모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과거 남성들의 가슴에 자리 잡은 최고의 로망이 '백치미' (백치가 아름다운 거야? 백치라서 아름다운 거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던 그녀, 정윤희. 그리고 '한국의 마릴린 먼로'로 추앙되던 배우. 그런데 과연, 그녀는 정말로 그러했을까? 물론 아주 주관적 판단이지만, 나의 대답은 단연코 'No!' 이다.

짧지 않은 나의 영화 작업 경력을 통해서 본 소위 '탑 클래스' 여배우들은 대외적으로 그녀들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와 무관하게 굉장히 현명하고 영악하다. 그런 토대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녀들이 그 '탑' 이란 자리에까지 갈 수 있었겠는가? 정말로 이 세상에 거저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도 그녀, 정윤희는 대단히 영악한 여배우였을 확률이 높다. 다만 사회에서 바라고 기대하는 본인의 모습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 그렇게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고 관리 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필자의 심증은 그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은퇴를 한 이후에 보여준 몇 가지 일련의 행보를 지켜보면 확실해진다.

첫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몹쓸 짓도 아닐 수 있는데, 소위 '간통'을 저지르고 구속, 수감되었던 그녀는 그 때의 그 사람과 결혼을 하여 전처소생의 자식들까지 키우면서 자신의 남달랐던 사랑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둘째, 은퇴한지 무려 25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지만, 그녀는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언론에 노출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1982년 5월 영화진흥공사에서 자신이 출연한 `여자의 함정`을 팬들과 함께 보며 팬들의 진물에 답하고 있는 정윤희
1982년 5월 영화진흥공사에서 자신이 출연한 `여자의 함정`을 팬들과 함께 보며 팬들의 진물에 답하고 있는 정윤희

은퇴 뒤에 검증된 그녀의 영민함

셋째, 지난 2001년에 영상자료원 주최 '정윤희 영화주간'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식 행사였음에도 그녀는 개막식에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남편과 큰 딸이 뜻밖에 참석해서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개막작이었던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를 관람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사전예고 없이 행사장에 참석하는 이변이 생겼다. 바로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는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가 상영되던 날이었다. 그녀는 영화 상영 20분 전에 도착해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는, 맨 앞자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 총총히 자리를 떴다. 당연히 외부에 사진 촬영 및 유출을 말아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남기면서 말이다.

참으로 그녀답지 않은가? 충무로 역사를 통 털어 가장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정말로 굵고 짧게 70~8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여배우.

어쩌면 그녀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커다란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타의에 의해 은퇴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이나 욕망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들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세상에 먼저 절교를 선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웠던 여배우로, 그렇게 그들의 '추억'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모든 면에서 그녀는 정말로 끝까지 성공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20년이 지난 후 여배우 심은하에게서 발견된다. (계속)
심은하는 정윤희와 인생 역정이 가장 흡사한 배우 가운데 하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심은하는 정윤희와 인생 역정이 가장 흡사한 배우 가운데 하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정윤희>
1954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
1985년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 3'을 마지막으로 꼭 10년 동안(정확히 한국 나이로 22세에 데뷔하고 32세에 은퇴를 하기 까지) 총 3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황윤정 / 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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