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Q|외국인배우가뜬다] 소주 한 잔! 밤 촬영을 마치고 신새벽에 함께 마시는 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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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7시 00분


외국인 스타들이 느끼는 국내 연예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동료들의 ‘정’이었다. 사진은 MBC ‘…하이킥’의 줄리엔 강. 스포츠동아DB
외국인 스타들이 느끼는 국내 연예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동료들의 ‘정’이었다. 사진은 MBC ‘…하이킥’의 줄리엔 강. 스포츠동아DB
한국에 대해 그렇게 길게 이야기해야 합니까?

한국어 억양 어려울 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동료들의 정. 이순재 선배님 김자옥 선배님의 자상함. 선배라는 말의 친근감. 한혜진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놀라시는 엄마. 역사책을 보며 느낀 한국의 아픈 과거. 날 응원해 주는 팬카페.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하는 뿌듯함. ‘제중원’을 잘 보고 있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한 여성에게 받은 응원메시지. 그리고 날 알아주는 분들…

□ 안방극장 외국인 배우 붐
줄리엔과 션의 적응기


“새벽까지 촬영하고 스태프들과 소주 한 잔? 그게 한국 촬영장의 정이죠,”

한국에 와서 소주라는 술을 처음 접한 두 남자. 이제는 당당한 소주 마니아가 됐다.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줄리엔강(이하 줄리엔)과 SBS ‘제중원’의 션리차드(이하 션)는 요즘 촬영장에서 몸으로 한국의 정을 체험하고 있었다.

줄리엔과 션.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다른 외모와 가치관을 가진 두 외국인이 한국에서, 그것도 배우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물음표’로 가득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그들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붙기까지. ‘배우’가 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두 남자는 어떻게 한국에 적응했을까?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 션은 ‘제중원’ 촬영장에서 새벽 촬영을 하면서 한국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촬영장은 가족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새벽까지 촬영을 하고 한 잔 하면서 친해지죠. 미국에서는 촬영을 마치면 저마다 각각 흩어지거든요. 같이 고생하고, 같이 회포를 푸는 ‘함께’의 의미가 강한 것 같아 정겨웠어요.”

프랑스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줄리엔은 한국어 억양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털어놨다.

“한국어에는 장단음이 있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대사를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이순재, 김자옥 선배님이 직접 나서서 설명을 해주세요. 한국 특유의 정을 느껴요.”

줄리엔과 션은 한국의 독특한 ‘선배’ 문화에도 이미 익숙해진 듯 보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들은 연기자들의 이름 뒤에 ‘선배’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스스로 한국을 ‘내 일부분’이라고 말한 션은 자신의 열성팬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지금 한국에서 연기하는 제 모습을 가장 신기해 하는 사람은 바로 엄마에요. 어렸을 적에는 제가 한국말을 전혀 못했거든요. 엄마가 한혜진의 팬인데 촬영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냈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어요.”

줄리엔 역시 형인 이종격투기 스타 데니스강이 자신의 높아진 인기를 이제야 알아주는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종영을 앞둔 줄리엔은 곧바로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 ‘로드넘버원’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로드넘버원’에서 미 해병대 소대장 역을 맡은 줄리엔은 요즘 한국 역사 공부에 한창이다.

“트렌디 드라마나 시트콤을 할 때와는 마음이 달라요. 그래서 틈틈이 역사책을 읽고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공부하고 있어요.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의 과거를 알면서 놀라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어요.”

이제는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인 두 사람이 실제로 자신들의 인기를 실감하는 때는 언제일까. 션은 인터넷을 통해 한 여성이 보냈다는 메시지를 소개했다.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텍사스에 산다는 한 여성에게 메시지를 받았어요. 한국말을 꽤 잘 하는 친구였는데 ‘제중원’을 잘 보고 있다고 응원해 줬어요. 팬 카페도 생겼다는데 깜짝 놀랐죠.”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다니엘 헤니를 시작으로 ‘달콤한 스파이’의 데니스오, 지난 해 ‘탐나는도다’의 주연을 맡은 피에르 데포르트(황찬빈)와 현재 방송 중인 ‘보석비빔밥’의 마이클 블렁크, 그리고 줄리엔과 션까지.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알려지면서 매년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연기자 지망생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외국인 전문 에이전시 관계자는 “한국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며 직접 프로필을 들고 에이전시를 찾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을 션과 줄리엔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줄리엔은 “과거에는 외국인 배우들이 그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연하는 배우로 등장하거나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만 출연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비중도 커지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역할도 하게 된 것 같아요. 한국이 세계화에 발맞추는 것처럼 좀 더 다양한 외국인 배우들이 출연했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전했다. 션 역시 “할리우드에는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활약하고 있잖아요.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도 문화와 인종을 넘나드는 캐릭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두 사람의 바람처럼 외국인 배우들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보석비빔밥’의 연출을 맡고 있는 백호민 PD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들의 문화가 다양성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TV속에 외국인을 보는 시청자들의 시각이 변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드라마에 외국인 배우들의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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