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정려원 “희망이란 아픈 기억 그래도 조금씩 전진”

  • 입력 2009년 4월 14일 07시 32분


지독한 연기고민… ‘왜 나만 깨물죠’ 절대자에 대들기도

배우 정려원은 인터뷰 내내 희망에 대해 얘기했다.

“사소한 것이 삶을 살아가게 한다”고 말하듯 ‘희망’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꼈지만 정려원은 희망을 얘기하고자 했다.

“많이 대들었다. 왜 나만 깨무느냐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려원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왜 나만 미워하는지 대들었고 하나님과 휴전 중”이라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물론 연기에 대해서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많은 상황은 독실함도 무색할 만큼 힘겨운 것이었던 듯하다.

그런 끝에 정려원은 영화 ‘김씨표류기’(감독 이해준·제작 반짝반짝영화사)를 만났다. 5월14일 개봉하는 영화 속에서 그녀는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산다. 인터넷으로만 세상과 소통할 뿐이며 똑딱거리는 시계바늘처럼 그 속에서만 꼼지락거릴 뿐이다. 생라면과 옥수수 등 마른 음식을 먹으며 식욕을 억제한 끝에 만들어낸 캐릭터의 눈가에 가득한 다크 서클은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보이기 싫은 어떤 상처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영화는 그런 그녀와 무인도에 갇혀버린 한 남자(정재영)가 만나 소통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려원이 말하는 희망과 ‘김씨표류기’ 속 희망이 다른 건 아닐 터. 하지만 인터뷰 속에서 정려원의 답변은 단순한 영화 홍보를 위한 말이 아닌 세상과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김씨표류기’를 선택한 배경은.

“작품과 나의 상황이 참 잘 맞물렸다.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기준을 세워 일정한 생활의 계획 아래 굳이 일이 아니더라도 바쁘게 지내곤 했다. 시간 관리를 중시 여기는 편인데 그런 계획대로 살아가는 캐릭터 모습도 실제 나와 닮았다.”

○‘김씨’는 누구인가.

“평범한 소시민들이 아닐까.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게 되고 여자 ‘김씨’도 세상과 차단된 것들에 대해 문을 열게 된다. 스스로 가두길 원했지만 말이다.”

○캐릭터처럼 숨고 싶었던 적이 있나.

“스스로 원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에너지를 얻고 싶은데 공급이 되지 않을 때. 사람을 만나 대화하면서 내 기운과 공기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 나 역시 힘들어질 때.”

○영감이라고 했다. 그게 떠오르지 않으면 글을 쓴다고 했다.

“미니 홈피에 아예 폴더를 만들어놓고, 악상이 떠오르듯 ‘그게 영감이다!’며 적는다. 일기이다. 제목도 ‘Hope’이다.

이 답변에서 정려원의 얼굴은 살짝 상기된 듯 했다. 그리고 그 속에 적어놓은 비유의 문장을 쏟아냈다. 절묘했다. “내 심장의 먹물이 빠진 것 같다”, “송충이가 내 심장을 갉아먹듯”, “은박지를 씹는 느낌” 등등에서 한동안 뭔가에 힘겨워한 것 같은 그녀의 자아가 날것 그대로 묻어나기도 했다. 그 만큼 정려원은 스스럼없이 자신에 대해 말할 줄 알았다.

“너무 힘들었다. 조명빛을 보고 울거나 컴퓨터 앞에 테이프를 붙인 표식을 보고 혼자 연기를 한다는 것. 연기가 리액션이면서 액션인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누구나 허덕이며 산다. 가끔은 맨몸으로 왔다 간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결국 문제를 풀어갈 사람은 나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다른 사람이 내게)느끼고 도울 수 있지만 버튼은 자신이 누르는 법이다.”

○혹시 상처가 있나.

“상처까지는 아니지만 감추고 싶은 것이 왜 없겠나. 가끔 마스크를 쓰고 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 답답한 건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면 그걸 또 가식이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언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그녀의 고민이 그 만큼 큰 것임을 읽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려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다만 고민에 “허덕이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그녀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통은 그래서 늘 아름답고, 희망적 결말에 가 닿는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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