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장자연 씨가 자살 직전 작성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소문으로 떠돌던 방송·연예계 내부의 비리 구조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장 씨는 이 문건에서 ‘연예기획사로부터 술, 골프 접대와 성(性) 상납을 강요받았으며 수차례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접대 상대로 드라마 PD 등 방송·연예계 관계자들의 실명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당한 억울한 피해와 연예계 비리를 고발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장 씨는 사실임을 강조하기 위해 문건에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손도장을 남겼다.
장 씨가 폭로한 내용은 신인 탤런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연예계 ‘권력’들이 성 상납을 요구하고 툭하면 폭력을 행사한다는 세간의 소문을 뒷받침한다. 장 씨는 소속 기획사가 특정 관계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라고 요구했으며 자신을 방안에 가둔 채 욕설과 함께 손과 페트병 등으로 구타했다고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신인 탤런트는 연예계의 약자(弱者)다. TV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의 무대 뒤에서 신인 탤런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이 횡행한다니 충격적이다. 신인 시절에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평생 노예문서로 악용한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검찰의 PD비리 수사에서도 먹이사슬 구조가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 11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KBS와 MBC의 전현직 PD들은 연예인을 출연시켜주는 대가로 기획사에 현금을 요구해 받거나, 주식도 받아 차명으로 관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계의 고질적인 금품수수 비리는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이번에 성 상납 의혹이 불거지면서 방송·연예계의 전체 이미지가 흐려지게 됐다.
수사 당국은 방송·연예계의 일부 일탈 사례로 흘려 넘길 일이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오랜 환부를 도려낸다는 자세로 문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방송 연예 콘텐츠는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으로 꼽힌다. 지금 같은 비리구조에서는 세계적인 문화콘텐츠가 나오기 어렵다. 관계 당국과 방송·연예계는 이번 파문을 정화(淨化)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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