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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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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정의의 여신은 법조인과 일반인 사이에서 공평해야겠지만 법조인의 ‘마음속 저울’은 사회적 약자에 기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판결을 결정짓는 조서의 행간에 숨은 얘기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24일 종영한 SBS ‘신의 저울’은 옥탑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범인과 희생자, 법조인에 얽힌 에피소드를 치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10%대의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마니아 사이에서는 ‘웰 메이드’ 법정 드라마로 통한다.
이 드라마를 쓴 유현미(43) 씨는 ‘그린로즈’ ‘사랑하고 싶다’ 등을 쓴 17년차 작가다. 대전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는 응했으나 얼굴 사진이 공개되는 것은 끝내 고사했다.
“원래 법에 의해 희생당한 두 여자가 법에 복수한다는 시놉시스가 있었어요. 하지만 법조인에 대한 편견만 키울 것 같아 포기했죠. 그 뒤 떠올린 것이 정의롭고 명망이 높은 법조인이 범인이면 어떨까 하는 모티브였어요.”
그는 2년 전 ‘신의 저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평소 스릴러와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경찰서와 법정 언저리에도 가본 적이 없다. 지난해 6월부터 사법연수원의 도움을 받아 법원과 검찰, 법률구조공단 등을 돌아다니며 영장전담 부장 판사 등 법조인과 재판에 연루된 피해자의 가족을 취재했다.
이 드라마는 1회에 진범이 모두 밝혀지는 독특한 구성을 취했다. 그래서 첫 회가 나간 뒤 “이렇게 뻔할 리가 없다” “2부작 아니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첫 회 반응에 당황해 범인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본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져 포기했죠. 그 대신 범죄를 저지른 법조인 아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 견디는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범인 쫓기보다 가슴에 와 닿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이 드라마에는 거대 로펌의 비리와 배심원제 등 현실적인 소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로펌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 부패하기 쉬운 것은 일반적인 경향이 아니냐”면서 “로펌과 관련된 신문 보도를 집필 과정에 참고했지만 현실과 연관짓지는 말아 달라”고 밝혔다.
그는 이 드라마를 쓰면서 유독 “그분이 자주 오셨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작가들끼리 쓰는 말로 글이 막힐 때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처럼 쉽게 풀렸다는 의미다.
“아직도 쓰고 싶은 얘기들이 무궁무진해요. 발로 뛰며 노트북컴퓨터에 쟁여둔 얘깃거리를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요. 대사 한 줄, 장면 하나만 봐도 제가 썼구나 하는 걸 다 알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즌2 집필도 이야깃거리가 많이 남아 있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