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 얻어맞고 억센 사투리 억척녀 역할 적응이 안되네요”

  • 입력 2008년 9월 18일 02시 59분


“저도 여자인데, 억척스럽게 보이고 싶겠어요? 늘 세련되고 쿨하게 보이고 싶은 게 여배우 마음이죠.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의 양춘희 역할을 제안 받고 고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호된 진통을 겪고 나면 그만큼 성장할 거라 생각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하고 있어요.”

‘에덴의 동쪽’(월 화 오후 9시 55분)에서 억척스러운 어머니 양춘희 역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이미숙(48·사진)을 17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중 양춘희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원수인 신태환(조민기)에 맞서 두 아들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역할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도 아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통적인 어머니 역을 맡은 것은 연기 인생 중 처음 있는 일이다.

“개인의 슬픔을 넘어서 시대적 아픔을 겪은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어요. 쥐어짜고 윽박지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시청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순간순간에 몰입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이 드라마로 한국의 어머니 상을 대표하는 배우로 굳어지는 건 원치 않아요.”

실제로 스물한 살짜리 아들과 열여덟 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 그는 극중 어머니 양춘희와 얼마나 비슷할까. 그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것만 비슷하다”며 “엄마 이미숙은 양춘희와 달리 자식의 인생을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저는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자식들도 자신이 더 소중하다고 여겨야죠. 자식이기 때문에 마음 약해질 때는 있지만…. 전 결혼과 육아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연기를 하면 돌아오는 거라도 있지 자식은 뭐 그런가요.”(웃음)

이제껏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는 주로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억센 사투리에 치고받는 장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매번 남자들이 떠받들어주는 역을 맡다 남자에게 따귀는 물론 목발로 얻어맞았더니 속상하더라”며 “공주로 대접받다가 적응이 안 된 것”이라며 웃었다. 가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그의 어머니는 “나이 들어서 고생하니 힘들겠다”고 속상해했다.

올해로 연기 인생 30년. 숫자에 연연하기보다 해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는 이 배역을 통해 앞으로 30년간 연기를 더 할 수 있겠다고 깨달았다고 했다. 그에게 중년의 여배우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은 없냐고 물었다.

“예순이 되든 일흔이 되든 사랑에 빠진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환갑 무렵에 획기적인 러브신을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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